봉수당진찬도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에는 사도세자의 묘인 “융릉”이 있고 그 옆에는 그의 아들인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1752~1800)와 그 왕비 효의왕후(1753~1821) 김 씨를 합장한 건릉(健陵)이 있습니다. 정조는 그 누구보다도 지극한 효심으로 백성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지요. 임금 자리에 오르자마자 아버지의 원혼을 달래려고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했습니다. 뒤주 속에서 죽어가야 했던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을 어린 11살에 목격한 정조는 아버지의 극락왕생을 빌고자 경기도 양주 배봉산에 묻힌 아버지 묘를 화산 융릉으로 옮기면서 용주사를 짓습니다. 용주사는 능원을 수호할 목적으로 세운 능침사찰(陵寢寺刹)이자 효행불찰(孝行佛刹)로 아버지 사도세자를 향한 정조의 애절한 효성이 곳곳에 배어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는 소나무 숲이 조성되어 있는데 융건릉 주변 소나무들은 송충이 피해를 입지 않는다는 유명한 이야기도 정조의 효와 관련이 있어 더욱 애틋합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어느 해 여름 융릉 뫼절(성묘)을 마친 정조가 무덤 주변을 거닐고 있을 때, 솔잎을 갉아 먹는 송충이를 보고 미물인 송충이까지도 아버지를 괴롭힌다고 생각하여 이로 깨물어 죽였다지요. 이후 무덤지기들이 송충이 구제 작업을 철저히 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을 것입니다. 살아생전에 하지 못한 효는 무덤가의 소나무 하나에까지 세심한 보살핌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어머니 혜경궁 홍 씨에 대한 극진한 효성은 김홍도가 그린 회갑연 그림인 봉수당진찬도(奉壽堂進饌圖)에 보면 잘 나타나는데 비운의 아버지 사도세자에게 다하지 못한 효를 지극정성으로 어머니에게 쏟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남편인 사도세자의 참사를 중심으로 자신의 한 많은 일생을 회고하며 쓴 자서전인 《한중록》으로 유명한 어머니 혜경궁 홍 씨, 그에 대한 정조 임금의 효성 또한 지극한 것이었지요. 지금은 화성시에서 정조의 효성스러움을 대대적으로 알리고 있지만 그의 어버이 사랑은 지금도 솔바람, 솔향기를 타고 많은 이들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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