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보한 바와 가티 재작 23일 오후 7시에 세상을 떠난 소파 방정환 씨에 대한 영결식은 금 25일 오후 1시에 경운동 천고도당에서 거행하얏다. 장지는 시외 홍제원 경성부 화장장이라 한다.”
<동아일보> 1931년 7월 26일 신문 한켠에는 <고(故) 방정환(方定煥)씨 금일 영결식>이라는 간단한 기사가 실려 있습니다. 여기에 소개된 방정환 선생은 1931년 7월 9일 갑자기 코피를 쏟고 입원하여 2주 만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33년의 짧은 생이었습니다.
소파 방정환 선생, 1899년 11월 9일 서울 종로구 당주동 야주개(夜珠峴)에서 태어나 15살에 선린상고(지금의 선린인터넷고등학교)에 입학했다가 가난으로 2년 만에 중퇴하고 19살에 천도교 3대 교주인 의암 손병희의 셋째 딸과 결혼합니다. 이후 보성전문을 나와 일본 동양대학을 마친 뒤 귀국하여 어린이를 위한 사업에 뛰어 듭니다.
방정환은 1923년에 잡지 <어린이>를 만들고 그 해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삼았지만, 1939년 일제가 금지해버리는 통에 한동안 지낼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해방 후인 1946년 5월 5일로 법령으로 공포하여 부활되었지요. 초기에 만들어진 어린이를 위한 결의문 7조가 있습니다.
첫째, 씩씩하고 참되고 인정 많은 사람이 됩시다.
둘째, 거짓말하거나 나쁜 말 하는 사람이 되지 맙시다.
셋째, 반드시 손수건과 수첩을 가지고 다닙시다.
넷째, 광고지를 찢거나 벽에 낙서하지 맙시다.
다섯째, 나무와 풀과 동물을 사랑하고 구호합시다.
여섯째, 나쁜 구경 다니지 말고 좋은 책을 읽읍시다.
일곱째, 솟는 해와 지는 해를 잊지 말고 보기로 합시다.
손수건과 수첩을 가지고 다니라든지 나쁜 구경 다니지 말자는 말이 흥미롭습니다. 어린이라는 말을 처음 만들고 한국 최초의 순수 아동잡지 <어린이>를 창간했으며 최초의 아동문화운동단체인 색동회를 조직하기도 한 그의 서른세 해 짧은 생은 말 그대로 어린이와 함께한 삶이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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