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지’는 잇꽃의 잎으로 만든 붉은 물감입니다. 잇꽃은 두해살이풀로, 홍람(紅藍), 홍화(紅花), 이꽃, 잇나물이라고도 하지요. 연지는 뺨에 찍는 것을 말하고, 곤지는 이마에 둥글게 찍는 것을 말합니다. 고구려 시대 고분인 수산리 벽화 무덤 행렬도와 쌍기둥 무덤 행렬도에 나타난 귀족 여성들의 모습에서도 연지와 곤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이익이 쓴 백과사전 <성호사설>에는 연지풍속이 흉노에서부터 들어왔다고 합니다. 연지풍속이 고려 때 원나라에서 들어온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고구려 고분벽화에 연지풍속이 있었음을 알 수 있기에, 원나라 유입설은 잘못된 것이겠지요. 또 삼국사기에도 고구려 악공들은 이마에 붉은 칠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연지는 대단한 사치품이어서 상류층 부인들만 사용할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잇꽃이 희귀하므로 연지를 금지해야 한다는 상소를 사간원에서 올리고 있습니다. 사실 연지 찍기는 우리만이 아니라 흉노족 그리고 몽골족, 티베트계 유목민족인 탕구트족도 좋아했다고 하지요.
그럼, 연지와 곤지는 왜 찍었을까요? 붉은색이 잡귀를 물리친다는 믿음 때문일 것입니다. 동짓날 팥죽을 쑤어 문지방과 문설주에 뿌리는 것, 중양절에 붉은 산수유 열매를 머리에 꽂는 것, 산간지방에서 전염병 예방을 위하여 곤지를 찍거나 붉은 색종이를 오려붙이는 것도 붉은 빛깔이 귀신을 물리친다는 믿음과 관련이 있습니다. 또 마을제사(洞祭)를 지낼 때 제관으로 뽑힌 사람의 집 앞에 황토를 뿌리는 것, 아기를 낳았을 때 대문 앞에 금줄을 치는데 이 때 다는 붉은 고추도 같은 믿음에서 비롯됩니다. 이제 혼인을 하는 신부가 연지와 곤지를 찍은 일은 없지만 그 유래만은 알아두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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