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얼자와도 진정한 소통을 이루려 했던 《홍길동전》의 허균

튼씩이 2016. 2. 1. 08:04

날마다 쓰는 한국문화 편지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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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4349(2016). 2.. 1.



“나는 큰 고을의 원님이 되었네. 마침 자네가 사는 곳과 가까우니 어머니를 모시고 이곳으로 오시게. 내가 봉급의 절반으로 그대를 대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거니, 결코 양식이 떨어지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네. 자네와 나는 처지야 서로 다르지만 취향이 같고, 자네의 재주가 나보다 열 배는 뛰어나지 않은가? 그렇지만 세상에서 버림받기는 자네가 나보다도 심하니, 내가 언제나 기가 막히게 생각하고 있다네. 나는 비록 운수가 기박해도 몇 차례 고을의 원님이 되어 먹고 살 수 있지만, 자네는 입에 풀칠하는 것조차 어려우니 안타깝구려.”

위 내용은 시대의 풍운아 교산(蛟山) 허균(許筠, 1569~1618)이 공주목사로 부임한 뒤 자신의 절친한 벗 이재영(李再榮)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입니다. 이재영은 어머니가 노비로 서자보다 못한 얼자(孼子)였지요. 철저한 신분사회였던 조선시대에 얼자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도 못하고 형에게 형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처지였습니다. 허균이 쓴 《홍길동전》의 홍길동과 같은 처지인 것이지요.

허균은 신분타파를 머릿속에만 가진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의 처지를 안타까워하고 진정으로 소통하고, 함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더구나 허균은 이런 행위가 양반들로부터 비난을 받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천한 노비출신으로 통정대부에 오른 유희경과도 절친했으며, 유희경의 연인인 기생 매창과는 진한 우정을 나누었지요. 최초의 한글소설을 쓴 허균은 한글을 창제함으로써 진정한 소통을 이루려고 한 세종과 닮은 철학을 가진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요즘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는 말들이 오가는 세상인데 어디 허균 같은 철학을 가진 인물은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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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박이말 시조 249 >

들봄(입춘)



이 고을 빠르고 저 마을 더디 오고

사내 센봄 솟아나고 아가씨 꿈 안느니

풀린 물 흘러 흐르고 개나린 눈 비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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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센봄 : 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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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본 한국문인협회 회장 김리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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