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흐드러진 매화 속 서재에서 벗을 기다리노라

튼씩이 2016. 2. 2. 10:38

날마다 쓰는 한국문화 편지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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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4349(2016). 2. 2.



조선시대 사람들은 매화를 무척이나 좋아했습니다. 선비들이 동지부터 입춘까지 “구구소한도”에 매화 91송이를 그려가며 봄을 기다렸는가 하면 심지어 퇴계 이황은 평생 동안 매화만 가지고 118편의 시문을 담은 퇴계매화 시첩을 남기기도 했지요. 또 선비들의 매화 사랑은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라는 걸작 그림들도 남겨놓았습니다. 매화서옥도란 말 그대로 매화 속에 파묻힌 서재에 앉아 책을 읽는 모습을 그린 그림입니다.

특히 조희룡의 <매화서옥도>는 금새라도 큰눈이 쏟아질 듯 어두운 하늘을 배경으로 차가운 느낌의 산이 우뚝 버티고 서 있습니다. 책읽기에 푹 빠져 있는 선비의 서재 위로 눈송이인 듯 매화꽃잎인 듯 알아보기 힘든 흰 점들이 분분히 흩날리고 있지요. 조희룡은 이 그림을 ‘미친 듯이 칠하고 어지럽게 그렸다’라고 고백할 만큼 매화 사랑에 푹 빠진 사람이었습니다. 매화 벼루에 먹을 묻혀 그린 매화 병풍을 치고, 매화에 관한 시를 읊조렸으며, 매화차를 즐겨 마셨다는 조희룡의 매화 사람이 손에 잡힐 듯합니다.

그런가 하면 전기의 <매화서옥도>는 서재에 앉아 있는 청록색 옷차림의 선비와 붉은옷을 입고 선비를 찾아오는 손님의 대비가 묘하게 어울립니다. 거기에 더하여 서재를 둘러싸고 있는 매화는 꽃인지 눈발인지 알 수가 없으며, 서재를 둘러싸고 있는 바위들과 산은 둥글둥글 부드러운 느낌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다만 이 명작을 남긴 전기는 안타깝게도 서른 살의 나이로 일찍 죽고 말았지요. 그런데 매화서옥도를 그린 화원들은 대부분 추사 김정희의 애제자들로 중인들이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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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악속풀이 248>

글 읽는 소리가 사람의 영혼을 흔들어 놓는다



지난주에는 1월 23일 토요일 오후 5시, 서울 삼성동 소재 한국문화의 집(KOUS)에서 열렸던 박문규 명인의 전통가곡 발표회 관련 이야기를 하였다.

남창 초수대엽(初數大葉) “동창이~”로 시작해서 이수(貳數), 우락(羽樂)-언락(言樂)-반엽(半葉)-계면초수-삼수(參數)-평롱(平弄)-편락(編樂)-편수(編數)-언편(言編)-태평가(太平歌)를 여창의 황숙경과 함께 불렀다는 이야기, 노래와 장단, 반주의 호흡이 일품이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 가곡의 특징으로는 음악적 형식, 즉 세련미와 정제미가 있다는 점, 삭대엽 계열은 느리게 부르고, 농(弄)이나 낙(樂)조에서는 보통의 템포, 편(編)에 이르면 빨라지는 만(慢)-중(中)-삭(數)의 형식이라는 이야기, 각 악곡은 5장 형식에 대여음(大餘音)과 중여음이 반드시 들어가며, 장고점의 변형이나 생략은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 선율에서 느껴지는 유장미와 창법의 장중미, 관현반주와의 협동, 화합, 상생을 연출해 낸다는 점 등을 이야기 하였다.

가곡은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며 살아온 순박한 사람들의 생활과 정신과 철학이 농축되어 있는 노래로 나라에서는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였고, 유네스코에도 세계무형유산으로 올랐으나 국내에서는 점차 소외 되어가고 있다는 이야기, 교육 정책의 부재로 전통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마음이나 귀를 열어 주기 못했던 사회의 책임이 크다는 점을 이야기 하였다.

이 날 박문규의 가곡창은 역동성이 돋보이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으며 강약의 변화, 잔가락이나 시김새의 처리, 반주와의 조화 등 음악적 균형을 제대로 이루고 있었다는 이야기, 그래서 그의 노래는 화려하고 난삽한 기교보다는 절제된 감정으로 처리하는 가락의 연결이 자연스럽다는 이야기, 그의 노래를 듣고 있는 동안 세상의 영욕(榮辱)이란 한낱 뜬구름에 불과한 것임을 조용히 일깨워주는 듯한 시간이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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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송서 학술대회와 공연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미 속풀이에서 소개했던 바와 같이 송서(誦書)란 책을 눈으로 읽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받아들여 입으로 소리를 내어 읽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높은 음과 낮은 음, 긴 음과 짧은 음의 음가를 구별하면서 그 내용을 노래하듯, 음악적으로 구성지게 표현하는 것이 바로 송서이고 율창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읽는다면 암기는 물론, 오래 앉아 읽을 수 있어서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송서나 율창은 일반 시조나 민요와는 조금 다르다. 정형화된 가락이나 고정된 장단체계는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악구(樂句)가 대개 숨 단위로 구분되어 있기 때문에 호흡으로 단락을 맞춘다거나 또는 글자에 따라 높낮이를 구별하고, 무엇보다도 가락이나 단락의 맺는 부분, 즉 종지형에서 음악적인 규칙을 체득한다면 더더욱 잘 부를 수 있다. 이러한 송서와 율창은 서울특별시가 시무형문화재로 지정한 바 있고 유창씨를 예능보유자로 인정한 점으로 보아 그 보존의지는 분명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단지 명맥만을 이어가는 것은 보존이 아니다.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도록 보다 적극적이고도 유연한 확산방안이 필요한 것이다. 문학적으로 또는 음악적으로 선비문화의 대표적 유산임은 재론할 여지가 없음에도, 자료도 부족하고 전문가가 부족해 본격적으로 활발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번 《송서 율창의 확산방안》의 학술대회에서 기조 강연자로 초빙된 원로 음악평론가 이상만(예술철학 전공) 선생의 <글 읽는 소리>가 참석자들로부터 큰 공감을 얻은바 있어서 그 내용의 일부를 속풀이 독자 제위께 소개하고자 한다.

“저는 오늘의 주제를 ‘글 읽는 소리’라고 표현해 보았습니다. 그렇게 명명한 이유로 이제는 다매체의 시대가 되었고, 종이와 책의 시대가 지나고 전자매체의 시대는 곧 음성 인식의 시대가 다가 온 것입니다. 인간의 원초적 본능인 말은 소리를 내어야 합니다. 거기에 소통의 기호인 글을 접합하면 인간의 완전한 소통 수단이 됩니다.

요즘 제가 새삼스럽게 느끼는 것은 몸이 약해질 때 제일 먼저 느끼는 것이, 목소리가 약해지고 가라앉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감정이 목멘다고 합니다. 이것은 바로 사람의 소리에는 사람의 혼이 스며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의 몸에서 나오는 소리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소중함을 느끼는 시대가 오지 않았나 생각이 됩니다. 과학 문명에 의존하지 않았을 때는 글 읽는 소리가 사람의 영혼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정인지의 글 읽는 소리에 이웃처녀가 매혹된 이 얘기는 자주 인용되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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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내용으로 조용히 시작된 기조 강연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말이란 바로 소리이고, 거기에 글을 접합하여 소통수단이 되는 것인데, 몸이 약해지면 소리도 가라앉고 또한 소리에 사람의 혼이 스며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하였으며 이어서 세계의 많은 종족들은 제각기 글 읽는 소리가 있는데, 이것은 모두 세계적 문화유산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또한 송서·율창은 그 근원이 당나라와의 교류로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 실례가 당음(唐音)이라는 것이다. 곧 중국의 글에서 소리를 붙여진 것이 많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당나라 시대의 수도였던 서안에 가보면 고려악(고구려음악)이 그곳에 전수 되었던 기록이 있기에 한자(漢字)의 영향이 강했을 때 우리가 모든 것을 한자에 의존하여 왔다고 하였다. 가령 아악인 문묘제례악은 중국에는 전해지지 않고 있어 대만(중화민국) 사람들이 우리 것을 배워간 사실을 돌이켜 볼 때, 중국에는 원형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1978년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홍콩의 부시장인 <다윈 첸> 이라고 하는 분과 교분을 맺고 있을 당시 제가 홍콩을 방문했을 때, 한자를 읽는 소리 값이 우리와 비슷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물었더니 광동 말이 한국어 발음과 비슷한데, 그것은 광동어가 옛날 중국어의 발음이 많이 남아있고 한국도 그런 것이 아닌가 설명을 했습니다. 나는 그때 문화인류학에서 쓰는 변방(邊方) 잔존(殘存), 변두리에 옛것이 많이 남아있다는 이론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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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한 범 / 단국대 명예교수, 한국전통음악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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