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철도여행에 대한 추억을 떠올려봅니다. 붐비는 완행열차 속 비좁은 틈을 타고 찐 달걀과 과자류를 담은 수레를 끌고 왔다 갔다 하던 홍익회 아저씨가 떠오르네요. 좌석 하나에 서너 명씩 앉혀 떠나던 수학여행 길이었습니다. 경부선 완행열차의 이러한 풍경은 요즘처럼 KTX가 초고속으로 실어다주는 시대에는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1905년 5월 28일 경부선 철도 개통식 이후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철도의 변모는 눈부십니다. 그러나 당시 상황은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1898년 9월 철도부설권을 장악한 일제가 경부철도를 놓으려 한 가장 큰 목적은 러일전쟁을 위한 군대와 군수품 수송이었습니다.
1891년부터 러시아가 시베리아 횡단철도부설공사를 시작했고, 영국이 이에 대항해 중국에서 경봉철도(북경-봉천)를 착공하면서 극동에서 열강들의 다툼이 철도를 매개로 날카롭게 전개되자 일본은 한국철도를 먼저 장악해 일본의 군사력을 한반도에까지 진출시켜 이들 두 세력을 견제하려 했던 것이지요. 일본은 바로 경부선 노선답사를 마치고 서울과 주요항구를 잇는 철도부설권과 경인, 경부철도 부설권을 요구했으나 우리 정부는 처음에 이를 거절합니다.
1895년 1월 일본은 경부, 경인철도 세목협정교섭안(細目協定交涉案)을 우리 정부에 제출하고 체결을 강요했지요. 갖은 수단을 동원한 일본은 1898년 9월 전문 15개조로 이루어진 경부철도합동조약(京釜鐵道合同條約)을 강제하고 경부철도부설권을 완전히 거머쥐고 말았습니다.
경부철도 부설은 경부철도합동조약 이후 3년 만인 1901년 8월 20일 서울 영등포와 9월 21일 부산의 초량 두 곳에서 각각 기공식을 열고 공사를 시작해 1902년 10월에 초량-구포 간, 1903년 12월에는 서울-수원 간 그리고 1904년 11월에는 서울-대전 간이 개통되었으며 난공사였던 대구-대전 간이 가장 늦게 개통되었습니다. 드디어 1905년 5월 28일, 착공3년 9개월 만에 서울 남대문역에서 경부선 개통식이 열렸지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철도공사에 강제 동원되어 중노동에 시달린 연간 70만 명에 이른 조선인들의 땀과 노동력입니다. 또한 일제는 경부선을 만들 당시 현금 대신 어음에 해당하는 500냥짜리 군표를 발행해 이것으로 조선 사람들의 땅을 사고 완공 후 현금으로 지불하겠다고 했습니다. 물론 개통 후 우리 국민들은 땅을 판 돈을 한 푼도 받지 못했으며 이 때문에 백성들 사이에는 경부선 철도를 비꼬는 타령조 가락이 한동안 유행하기도 했지요(<자동차생활> 2006년 4월호 참조)
경부선, 경부선의 철도 역사는 굉장하다.
산 뚫고 1000여 리에 지반가(地盤價) 뉘 받았노.
군표 제조비는 500냥 들었다네,
500냥 자본으로 경부철도 놓았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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