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게시판/하루하루가 잔치로세(김영조)

5월 29일 - 바다의 탱크 거북선 이순신 이전에도 기록이 보입니다

튼씩이 2018. 5. 30. 16:10

임진왜란 때 이순신이 개발하여 일본 수군을 격파한 것으로 알려진 거북선. 그런데 현존하는 문헌 가운데 거북선〔龜船〕을 처음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은 <태종실록>입니다. 태종 13년(1413) 5월 초에 “거북선이 싸우는 모습을 보았다”고 했고, 2년 후에는 다시 “거북선이 매우 견고하여 적선이 해치지를 못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 후 180여 년간 거북선에 관한 기록이 보이지 않다가 이순신 장군의 일기인 《난중일기(亂中日記)》 1592년 2월 8일 “거북선에 사용할 돛 베(帆布) 29필을 받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난중일기》에 따르면 거북선에 비치한 포(砲)를 처음 발사한 날은 임진년(壬辰年) 3월 27일이며, 처음 해전에 참가한 것은 장계(狀啓)에서 “5월 29일 사천해전(泗川海戰)”이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거북선이 임진왜란 때 돌격전선으로서 큰 힘을 발휘하였고, 전란 후에는 그 모양이 조금씩 변하여 용머리〔龍頭〕는 거북머리〔龜頭〕로 바뀌고, 치수도 일반적으로 장대해지는 등 차차 크게 건조되었습니다. 정조 19년(1795)에 간행된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에는 전라좌수영 거북선, 통제영 거북선의 그림과 함께 건조에 필요한 부분적인 치수가 어느 정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거북선의 장점은 내부 전투원을 보호할 수 있다는 점과 앞뒤 그리고 오른쪽과 왼쪽에 무려 14개의 화포가 달려서 적선에 포위된 때에도 얼마든지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또 배 위에 철판이 씌워져 있어 적군을 막는 데 뛰어나기 때문에 적선이 접근전을 펼쳐도 쉽게 막아낼 수 있습니다. 그 까닭에 거북선이 맹렬히 돌진하여 닥치는 대로 포를 쏘고, 용머리를 이용하여 적선을 깨뜨리는 작전도 펼칠 수 있었지요. 밀려드는 왜군을 격파하는 데 큰 공을 세운 거북선은 충무공 이순신과 더불어 잊을 수 없는 겨레의 자랑스러운 배임에 틀림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