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윤의 연자멱시도
일제강점기 초대총독으로 내정된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 1852~1919)는 그 뒤 다시 3대 조선통감으로 1910년 5월 30일 부임합니다. 그는 강력한 무력을 쓴 총독으로 악명이 높은 데다가 조선의 고문서와 같이 중요한 서책들을 대량으로 약탈해간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일제강점기 초대총독이었던 데라우치는 중국, 조선, 일본의 고문서 1만 8,000여 점을 수집했다. 데라우치 사후 그의 아들 수일(壽一)이 1922년 고향인 야마구치시에 이 책들을 모아 데라우치문고를 설립했다. 이 문고는 1957년 야마구치현립대학에 기증되었다.”
이 글은 도쿄에 있는 고려박물관에서 나온 《잃어버린 조선 문화유산》이란 책 21쪽에 소개된 ‘데라우치문고’ 첫머리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고려박물관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95%가 순수 일본인으로, 일본인 가운데서도 가장 양심 있는 사람들이 만든 박물관입니다.
“조선관계 자료 수집은 데라우치의 조선 총독 취임 뒤 바로 시작되었다. 그는 책 전문가인 구도우(工藤將平) 씨를 곁에 두고 조선고서묵적류(朝鮮古書墨蹟類)와 함께 창덕궁 안에 있던 규장각의 엄청난 도서와 자료들을 조사시켰으며 이때 많은 책을 수집했다.”
점잖게 표현해서 그렇지, 한국인이 이 일을 기록했다면 ‘그때 웬만한 책은 다 훔쳐갔다’고 썼을 것입니다. ‘규장각 도서 조사’라는 말도 우스운 말입니다. 재고 책 조사도 아닌데 그동안 잘 있던 규장각 도서를 무엇 때문에 조사한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데라우치가 약탈해간 1만 8,000여 권은 아무 데서나 볼 수 있는 시시한 책이 아니었습니다. 그 분량도 어마어마한 것이지요. 《잃어버린 조선 문화유산》에서는 데라우치를 포함한 이토 히로부미 같은 수 많은 총독부 인물들이 조선의 값진 문화유산을 싹쓸이하다시피 가져갔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고려불화 90%를 비롯하여 세계문화유산에 빛나는 값진 물건들이 도쿄박물관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동경대학, 동경예술대학, 교토대학, 오사카시립 동양도자미술관, 야마구치현립대학 등등을 채우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해결책은 모두 깨끗이 제자리로 돌려주는 일입니다. 일본의 양심은 이미 실험대에 오른 지 오래입니다. 공소시효 없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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