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는 17세기 초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급격히 퍼졌습니다. 조선 후기 학자 한치윤은 “조정의 높은 벼슬아치부터 부녀자, 어린아이, 종들까지도 담배 피우기를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또 순조도 “요즘에는 담배 피우는 습관이 고질이 되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담배를 즐기지 않는 사람이 없고, 어린애 티를 벗기만 하면 으레 담뱃대를 문다. 세상에서 하는 말인즉 ‘팔진미는 안 먹어도 담배만은 끊을 수 없다’”고 했으니 당시 담배 유행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담배가 크게 유행하다 보니, 농가에서는 곡식을 심지 않고 너도나도 돈이 되는 담배를 재배하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서초(西草), 곧 평안도와 황해도 담배는 품질이 아주 좋아 값이 비쌌던 까닭에 그 지방의 좋은 땅이 거의 담배를 심는 부작용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영조는 경상, 충청, 전라도 관찰사에게 담배를 심지 못하도록 하라는 명을 내리기까지 했지요. 하지만 2년 뒤인 영조 10년에 장령 윤지원이 담배의 해독은 술보다 더 심하니 시골에서는 심지 못하게 하고 가게에서 팔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 담배 심기를 금한 일은 실패했나 봅니다.
특히 학자 임금인 정조와 책을 무려 549권 펴낸 다산 정약용도 골초였다고 하지요. 반대로 ≪성호사설≫을 쓴 성호 이익과 ≪청정관전서≫를 쓴 청장관 이덕무는 대표적인 흡연 유해론자입니다. 이익은 “담배는 안으로는 정신을 해치고 밖으로는 듣고 보는 것을 해친다”고 말했으며, 이덕무는 “간혹 자식에게 담배를 가르치는 부모가 있는데, 이는 무식한 부모요, 부모가 금하는데도 몰래 담배를 피우는 자식은 불초한 자식이다”라고 강조했습니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세계보건기구(WHO)가 담배는 해롭다며 5월 31일을 ‘담배 없는 날’로 지정했습니다. 정조와 정약용이 살아 있었다면 이날에 과연 어떻게 반응했을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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