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게시판/하루하루가 잔치로세(김영조)

6월 23일 - 궁중혼례 이야기 하나, 51살 차이, 영조와 정순왕후의 혼례

튼씩이 2018. 6. 28. 10:58

어머니가 천한 무수리 출신이지만 극진한 효자로 소문난 영조는 계비 정순왕후와 나이 차이가 무려 51살이 난다는 이유로도 유명한 임금입니다. 1757년, 정비인 정성왕후(貞聖王后)가 승하하자 영조는 부왕인 숙종의 유언에 따라 후궁 가운데서 새 왕비를 책봉하지 않고 1759년 6월 9일 김한구의 딸을 왕비로 간택하여 같은 해 6월 22일 창경궁에서 혼례를 올립니다. 아마도 부왕인 숙종이 후궁이었다가 폐위된 장희빈과의 골치 아픈 일을 회상하여 절대 계비를 후궁 가운데서 뽑지 말라고 한 모양입니다.


 

당시 영조의 나이 66살, 정순왕후는 15살이었지요. 조선 개국 이후 임금의 혼인 가운데 가장 나이 차가 큰 혼인이었습니다. 그녀가 왕비에 책봉될 때 부모는 물론 조부 김선경도 생존하고 있었으며 심지어 1735년에 태어난 사도세자보다 열 살이나 어린 왕비였습니다. 그럼에도 정순왕후가 왕비로 간택된 까닭은 무엇일까요?

 

간택 당시의 일화로 영조는 간택규수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깊은 것이 무엇인지 물었는데 다른 규수들은 ‘산이 깊다’, ‘물이 깊다’는 답을 했지만 유독 정순왕후는 ‘인심이 가장 깊다’고 답하여 영조의 눈길을 사로잡았다고 합니다. 가장 아름다운 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목화꽃은 비록 멋과 향기는 빼어나지 않으나 실을 짜 백성들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꽃이니 가장 아름답다’라는 말로 영조를 감탄시켰지요. 왕비 책봉 이후에도 상궁이 옷의 치수를 재기 위해 잠시 돌아서달라고 하자 단호한 어조로 “네가 돌아서면 되니 않느냐”고 추상같이 답하여 어린 나이에도 왕비의 체통을 중시했던 그녀의 면모를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