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야 죽으면 어차피 다비(茶毘)에 붙여질 몸이니 내 걱정은 말고 어서 불을 지르시오.”
“스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나오세요!”
“너희는 군인으로서 상부의 명령에 따라 불을 놓으면 되고, 나는 중으로서 마땅히 절을 지켜야 해. 본래 중들은 죽으면 당연히 불에 태우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나이도 많고 죽을 날도 멀지 않았으니 잘된 것 아니냐.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불을 질러라.”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월 3일 오대산 상원암에서 76살의 한암스님과 20대 초반의 육군 중위가 물러설 수 없는 한판 대결을 벌이는 장면입니다. 군은 1.4 후퇴를 하면서 절을 불태우려 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그 상원암은 국보 제36호 상원사 동종, 국보 221호 문수동자상, 국보 292호 상원사 중창권선문 따위의 문화재가 있었습니다. 한암스님이 자신까지 태우라고 하자 결국 국군 중위는 절 불태우기를 포기하고 대신 상원사의 문짝 수십 개를 떼어내서 불을 지르도록 함으로써 절을 불태운 것으로 위장했습니다. 상원사와 국보 문화재들은 한암스님의 죽음으로 맞선 기세와 지혜로운 국군 장교의 결단으로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조계종 초대종정을 지낸 한암 스님(1876~1951)은 1876년 3월 27일에 강원도 화천군 하남면 계성리에서 태어나 22살 때 출가했습니다. 1925년 서울 봉은사 조실 스님으로 있을 때 “차라리 천고에 자취를 감춘 학이 될지언정 삼춘(三春)에 말 잘하는 앵무새의 재주는 배우지 않겠노라” 하면서 오대산에 들어가 그 이후 열반할 때까지 상원사 산문 밖으로 한 발짝도 나오지 않고 27년간을 상원사에서 주석하시다가 앉은 채로 열반하셨으며 1.4후퇴 때 상원사를 지킨 일화는 지금도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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