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 아무개가 공주목사가 되었는데 삼복에 파리가 많은지라 양이 이를 싫어하여 아전으로부터 기생과 종들에 이르기까지 매일 아침 파리 한 되를 잡아 바치게 하고 이를 독촉하니 위아래 할 것 없이 다투어 파리를 잡느라 쉴 겨를이 없었다. 이리하여 주머니를 가지고 파리를 사러 다니는 사람이 생겼는데 그 사람을 파리 승(蠅) 자를 써서 승목사(蠅牧使)라고 불렀다.”
조선 전기 문신이며 학자인 성현(成俔)의 수필집 ≪용재총화(慵齋叢話)≫에 나오는 글입니다. 성현(成俔)은 세조 때 급제하여 대제학에 오른 학자요, 정치가로 그가 지은 이 책은 조선 시대 수필문학의 백미(白眉)라는 평가를 받지요. 그는 평생에 열 가지 맹세를 했는데 “하늘을 공경하고〔敬天〕, 홀로 있을 때 삼가하고〔愼獨〕, 마음을 바로 세우고〔正心〕, 욕심을 적게 품고〔寡慾〕, 과오를 고치고〔改過〕, 수치를 알고〔知恥〕, 검약을 세우고〔守約〕, 간단하게 행동하고〔行簡〕, 사람 얼굴을 썼으면 사람의 짓을 하여야 하고〔踐形〕, 예를 회복한다〔復禮〕”는 마음으로 살다간 사람입니다.
그가 지은 ≪용재총화≫ 는 고려에서 조선 성종 대에 이르기까지의 민간 풍속이나 문물제도, 문화, 역사, 종교, 예술을 비롯해 당시 사람들의 삶을 골고루 다루고 있어 민속학이나 입에서 입으로 전해온 구비문학(口碑文學) 연구 자료로 활용되지만 승목사 같은 재미있는 내용이 많으므로 무더위에 원두막에서 파리를 쫓으며 한 번쯤 읽어보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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