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의 광복을 1년 앞둔 1944년 6월 29일 성북동 심우장에서 만해 한용운은 영양실조로 쓰러져 숨져갔다. 유해는 제자 박광, 김관호 등이 미아리 화장장에서 다비한 후 망우리 공동 묘지에 안장했다.”
만해기념관 누리집에 올라있는 만해 한용운의 죽음에 대한 기록입니다. 만해 한용운은 조선 왕조 말 국운이 기울어가던 1879년 8월 29일 충남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 491번지에서 한응준(韓應俊)과 어머니 온양 방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 이름은 유천(裕天)으로 여섯 살부터 서당에서 한학 공부를 시작하여 아홉 살이 되던 해에 《서경 書經》에 능통할 정도의 실력을 쌓아 조용한 두메산골에서 신동으로 칭찬이 자자하게 퍼져 나갑니다.
그때 나라의 운명이 바람 앞에 선 등불 같을 때 아버지 한응준은 어린 유천을 불러놓고 세상 형편과 국내외 돌아가는 정세를 소상히 설명하여 주지요. “아버지는 역사상 빛나는 훌륭한 사람들의 언행과 국내외 정세를 알아듣도록 타일러 주셨다. 이런 말씀을 들으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내 가슴이 뜨겁게 타 올랐다”고 회상합니다. 만해의 올곧은 사상이 아버지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조선 사람이다. 왜놈이 통치하는 호적에 내 이름을 올릴 수 없다”면서 평생을 호적 없이 지냈으며 “일본 놈의 백성이 되기는 죽어도 싫다. 왜놈의 학교에도 절대 보내지 않겠다”면서 집에서 손수 어린 딸을 공부시켰으며 총독부 청사를 마주보기 싫어 북향집인 심우장을 지은 일화는 유명하지요. 이곳 성북동 심우장에서 만해 한용운은 세상나이 66살, 범랍 39년의 세월을 마치고 6월 29일 조용히 눈을 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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