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는 놈과 업는 놈은 언제던지 생활상 차별이 심하지만은 특히 녀름에는 그 차별이 우심(尤甚)하다. 잇는 놈은 대하거옥(大厦巨屋)에 광대한 정원을 가지고도 산정수각(山亭水閣)을 또 지여노코 낫이면은 장기(將棋) 바둑으로 소일하고 맥주 사이다로 목을 취기며 미첩(美妾)의 부채바람과 전풍기(電風機) 바람에 흑흑 늣기다십히 하고 밤이면은 생(生)모긔장안에 그물(網)에 걸닌 고기 모양으로 멀둥멀둥 누어서 빈대가 무엇인지 모긔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다.”
1924년 8월 1일 <개벽> 50호 <貧者(빈자)의 녀름과 富者(부자)의 녀름>에 나오는 ‘있는 놈’의 여름나기 풍경입니다.
그렇다면 ‘없는 놈’의 여름나기는 어떠할까요? 현대문으로 고쳐 보면 “없는 놈은 한 칸 방도 구하기 어려워 동가숙서가식할뿐더러 모기, 빈대, 벼룩에 뜯겨 온몸이 성한 구석이 없다. 있는 놈은 삼시 세 끼를 육개장에 영계찜을 배가 부르도록 먹고도 입맛이 없느니 있느니 하며 일식과 양식을 번갈아 먹으며 청요리는 느끼하다고 입에 대지도 않는다. 없는 놈은 세 끼 보리죽 양 밀가루 범벅 한 그릇도 얻어먹지 못해 배가 고파 허리띠 자국이 나도록 졸라매는데 ……,”
이 두 계층 사이의 비교가 끝없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 하나도 그릇된 말이 아닙니다.
“있는 놈은 원산이나 인천 해수욕장을 가지만 없는 놈은 제 몸에 쏟아지는 땀으로 해수욕을 하고 미지근한 수돗물조차도 물값이 없어 마시질 못한다. 금일 우리 朝鮮(조선)에 이러한 비참한 사정이 어느 곳인들 업스리요만은 특히 京城(경성)이라는 도회지에 더욱 만타”는 대목에 이르면 빈부의 격차가 뚜렷이 느껴집니다. 세월이 변해 살기 좋은 세상이 왔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부자들의 여름과 가난한 사람들의 여름이 다름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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