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얼레빗) 3226. 선승을 닮은 근정전 월대 원숭이상

튼씩이 2016. 2. 18. 17:11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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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4349(2016). 2. 18.



근정전(勤政殿)은 조선 최초의 궁궐인 경복궁(景福宮)의 정전(正殿) 건물입니다. 이 근정전에 오르려면 돌계단 월대(月臺)를 지나야 하지요. 이곳에서는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거나 국가의식을 치루고 외국 사신을 맞이하던 곳입니다. 또 일식 때 임금을 뜻하는 해가 가려지는 것을 불길한 징조로 생각하여 해가 다시 나오기를 비손하는 의식인 구식례(救食禮)도 이곳에서 했지요.

월대의 가장자리에는 돌난간을 사방에 둘렀고 그 돌난간 기둥과 층계 좌우의 돌기둥의 머리 위에는 동물조각을 새겼습니다. 월대 난간에 새긴 동물조각을 보면 사신상과 개와 돼지를 뺀 십이지상이지요. 사신(四神)상은 동서남북 네 방위를 다스리면서 우주의 질서를 받쳐주는 상징적인 동물이며, 십이지상은 시간과 방위 개념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상징물입니다.

그런데 월대의 모든 동물이 해학적으로 조각이 돼있지만 원숭이는 해학적이라기보다는 달관의 경지에 다다른 선승의 느낌을 주고 있지요. 원숭이는 동물 가운데서 가장 영리하고 재주 있는 것으로 꼽힌 대신 사람을 많이 닮은 데다 간사스러운 흉내 따위로 오히려 재수 없는 동물로 흔히 여겼습니다. 띠를 말할 때 ‘원숭이띠’라고 말하기보다는 ‘잔나비띠’라고 표현하는 것도 이런 믿음 때문이지요. 잔나비는 원래 신(申) 자의 풀이인 ‘납’이 말밑(어근)인데 여기에 작은 것을 의미하는 접두사 ‘잔’과 접미사 ‘이’가 붙어 ‘잔납이’가 되었다가 연음으로 잔나비로 바뀌었습니다.

옛 얼레빗 (2012-02-15)


2253. 지구를 한 바퀴 돌며 읊은 시집 ≪환구음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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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위에서 종소리가 사람을 대신 부르니 / 통속에서 전하는 말 조금도 어그러짐이 없네.” 위 시는 조선 후기 문인 김득련(金得鍊)이 쓴 한시집 ≪환구음초≫에 있는 내용으로 서구를 방문했다가 전화기를 보고 쓴 시입니다. ≪환구음초≫는 1896년 민영환 일행이 러시아황제 대관식에 참석하고 중국ㆍ일본과 미국 그리고 유럽을 대한민국 최초로 돌아볼 때 참사관으로 따라간 역관 김득련(金得鍊)이 보고 들은 것을 쓴 책입니다.

이 책에는 “카나다에서 기차를 타고 동쪽으로 구천리를 가면서”, “뉴욕의 부유하고 번화함이 입으로 형언할 수 없고 붓으로도 기술할 수 없다”, “뉴욕 전기박람회에 가서 보니 세상의 많은 물건이 모두 전기 기계로 만들어졌다. 관현은 저절로 연주되고, 차와 떡도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그 가운데 가장 기이한 것은 오백 리 밖에 있는 큰 폭포의 소리를 끌어와 물그릇 속에 담아 놓은 것이다. 귀를 기울여 들으면 사람을 오싹하게 한다.”와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습니다.

이들은 일곱 달 동안 여덟 나라를 거치며 모두 육만 팔천삼백육십오 리를 다녔습니다. 조선은 이렇게 1896년에야 세계 여행을 시작하지만, 일본은 25년 앞선 1871년 이토 히로부미로를 비롯한 100명이 넘는 대규모 이와쿠라 사절단(岩倉使節)을 서구에 파견했지요. 사절단은 귀국하여 서구의 식민지 기술을 재빠르게 익혀 조선을 침략하고 맙니다. 지구를 한 바퀴 돌며 읊은 시집 ≪환구음초≫을 보면서 우리도 좀 더 빨리 세계의 흐름을 파악하였다면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소장 김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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