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일본 궁내부대신인 다나카는 황태자 순종 결혼식에 축하사절로 참석했다가 개성에 있는 경천사십층석탑을 일본군 85명을 보내 뜯어서 일본으로 가져가버렸습니다. 이를 안 한국의 문명화와 국권수호를 위해 온몸을 불사른 호머 헐버트(Homer B. Hulbert, 교육자, 역사학자, 한글학자, 언론인, 선교자, 독립운동가) 박사는 즉시 현장을 답사한 뒤 <재팬 크로니클>과 <뉴욕포스터>에 기고하고 만국평화회의가 열리고 있는 헤이그에서도 이 사실을 폭로했지요. 이런 헐버트의 노력으로 국보 86호 경천사석탑을 되돌려 받을 수 있었습니다.
헐버트는 <사민필지>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교과서를 펴내면서 한글애용을 적극적으로 주장한 한글학자이기도 했지요. “나는 웨스트민스터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한다.”라고 평소 소원한 대로 그는 서울 양화진에 묻혔습니다. 헐버트박사기념 사업회는 해마다 8월 5일 양화진묘지에서 헐버트박사 추모식을 열고 있는데 2009년 8월 5일은 60주기를 맞이하는 해였습니다.
헐버트 박사(1863∼1949)는 1886년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교육기관인 육영공원 교사로 한국에 온 이래 <독립신문> 창간에 이바지했고 1907년 고종 황제에게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특사 파견을 건의하기도 했습니다. 이 일로 1910년 이 땅에서 추방되었지만, 미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3·1운동을 지지하면서 한국의 독립을 위해 온몸을 바쳤지요. 할아버지의 60주기 추모식에 참석한 헐버트 박사의 손자인 브루스 헐버트 씨 부부는 “열 살 때까지 할아버지가 살아계셨다. 할아버지는 한국의 아리랑과 전래동화를 손자 손녀들에게 매일 들려주셨는데, 일본이야기가 나오면 매우 격해지셨다”고 전했습니다. 이국땅에서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하다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 외국인묘지에 잠든 푸른 눈의 한국인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그의 한국사랑에 대한 작은 보답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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