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얼레빗) 3229. 황태 말리기, 하늘과 사람 ‘7대3제’로 하는 동업

튼씩이 2016. 2. 23. 08:09

날마다 쓰는 한국문화 편지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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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4349(2016). 2. 23.



원래 함경도 원산의 특산물이었던 ‘살이 노란 명태’는 황태로 노랑태라고도 합니다. 겨울이면 원산 앞바다에서 명태가 많이 잡혔고 명태가 많이 나는 지역에서는 다들 명태 말리는 일에 매달렸습니다. 그런데 그냥 말린 명태는 바짝 말라 바로 북어가 되지요. 하지만 원산에서는 12월 중순에서 덕장에 걸어 밤이면 섭씨 영하 20도 아래의 추운 날씨에 꽁꽁 얼었다가 낮에는 햇볕을 받아 살짝 녹으면서 물기를 증발시켜 독특한 북어를 만들어 냈습니다. 북어는 몸이 두툼한 채로 유지 되면서 살이 노랗게 변했기에 황태라는 이름을 얻었구요.

한국전쟁 이후 강원도로 내려온 원산 사람들이 이 황태를 재현하기 시작하는데 그것이 바로 인제군 용대리 근처입니다. 그런데 황태를 만들려면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겨울 날씨인 삼한사온이 반복되는 게 가장 좋지만 요즘 우리나라 날씨는 삼한사온을 잊은 지 오랩니다. 더구나 겨울이 따뜻하면 황태가 바싹 마르고 검은빛을 띠어 하품이 되지요. 그래서 용대리 사람들은 황태 말리는 일을 하늘과 사람이 7 대 3제로 하는 동업이라고 말합니다.

더 큰 문제는 이제 우리나라 동해안에서 명태가 잡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 우리나라에서 팔리는 명태류는 거의 러시아산이지요. 이렇게 러시아에서 수입된 동태는 속초 등 동해안에서 배를 따고 내장을 없앱니다. 그 뒤 명태는 다시 냉동 처리를 하여 용대리로 가져와 덕에 걸게 되지요. 그래서 용대리 황태덕장 부근의 판매장과 음식점 황태의 원산지는 러시아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도 분명 이곳의 황태는 용대리 황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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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악속풀이 251 >

일제강점기 말에는 기예증이 있어야 무대에 섰다



지난주에는 일제강점기 말 가무연구회의 자체발표회나 흥행 공연에서 산타령을 불렀던 이창배와 정득만(鄭得晩)을 소개하였다. 정득만은 선소리 산타령이 국가지정 문화재로 지정될 당시, 최초의 예능 보유자 5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벽파 이창배와 함께 80년대 초반까지 경서도 소리의 중흥을 위해 애쓴 명창이라는 이야기, 20세 이후, 문세근과 최경식에게 배웠으며 맑고 높은 목소리를 지니고 있고, 특히 사설지름시조를 비롯해 12잡가 중 유산가, 소춘향가, 제비가와 노랫가락, 건드렁타령, 금강산타령, 풍등가 등을 잘 불렀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의 창법 중, 조르는 목은 누가 흉내를 내지 못했으며 강약이 분명해서 맛깔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는 이야기, 아끼는 제자가 공부를 소홀히 한다면 찾아가 지도해 줄 정도로 경기소리의 내일을 걱정했던 명창이었다는 이야기, 정득만이 부르던 산타령은 과천패의 모갑이 소완준이 전해준 산타령이며 합창으로 부르는 경우, 가사나 가락, 장단, 시김새가 서로 다르게 전해오고 있는데, 이를 인지한 벽파 이창배는 사설만이라도 통일시키기 위해 《가요집성》을 저술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벽파 이창배가 지은 《가요집성》은 가사의 내용이 온전하게 전해지지 않고 부르는 사람마다 다른 발음으로 불리던 경서도 소리의 오류를 명쾌하게 해결해 주었다. 그래서 지역마다, 혹은 명창마다 조금씩 다르게 불러온 고어(古語)의 의미를 분명하게 하였고, 이와 함께 원색(原色)적이고 직설(直說)적인 내용의 노랫말을 순화하는 내용으로 수정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고쳐진 내용들은 거의 그대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어서 전수교육의 자료로 혹은 교육현장에서 전수되어 오고 있는 것이다. 벽파의 《가요집성》이 교과서가 된 이후에는 부르는 창자들 간에 가사가 다르다든가, 가락이나 장단이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시비(是非)가 일어나는 일은 거의 없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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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파 이창배와 정득만이 소속되어 활동하던 <가무연구회>와는 별도로 조선 총독부 정보과 소속으로 <조선음악협회>가 있었다. 이 협회 안에는 방(邦)악부, 양(洋)악부, 조선악부가 속해 있었는데, 명칭 그대로 방악부는 일본 사람들만으로 구성되어서 일본음악을 연주하는 단체를 말함이고, 양악부는 양악을 전문으로 하는 악사들의 단체, 그리고 조선악부는 조선의 전통음악을 위주로 하는 단체였다. 이 조선악부 속에 <조선음악단>과 <조선 가무단>이 구분되어 있었지만 그 실상은 산업 전사를 위문한다는 명분이었고, 흥행을 주로 하였다고 한다.

조국 광복을 앞두고 있던 1940년대 전후는 태평양 전쟁이 긴박해지고 있던 시기였다. 남자들은 강제 징용으로, 여자들은 위안부로 끌려가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 음악단이나 가무단에 가입이 되면 징용이나 정신대에 차출되지는 않았기에 너도나도 몰려들었다고 한다. 보지 않아도 짐작이 되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누구나 음악단이나 가무단에 입단이 허락되는 것은 아니었다. 입단을 원한다고 해도 아무나 입단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까닭은 총독부 정보과에서 조선 음악에 대한 실력있는 사람을 뽑기 위해 시험을 치렀고, 그 시험에 합격한 사람에 한해서 기예증을 발급하였기 때문이다. 시험은 악기를 잘 다루고 소리만을 잘해도 합격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문제는 필기시험을 통과해야 합격이 되는 것이었기에 기예증을 받는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던 것이다. 이 기예증이 없으면 당시엔 무대에도 오를 수도 없었다 하니 그 기예증의 위력이 대단했던 것이다.

음악인들에게는 기예증이 필요했고, 그것을 받기란 쉽지 않았으니 아무리 노래를 잘 하고 악기를 잘 만지는 재주꾼이라 해도 필기시험을 통과해야 하고, 기예증이 없으면 무대에 서지 못하고 징용에 끌려가게 되어 있었으니 음악인들의 치열한 경쟁은 충분히 상상이 된다. 천신만고 끝에 어렵게 기예증을 받은 사람들은 <조선음악단>과 <조선가무단>으로 구분하여 산업전사 위문공연을 떠나게 되는데, 가령 음악단이 북쪽으로 떠나게 되면 가무단은 남쪽으로 가게 되며 그 기간은 수개월씩 걸렸다는 것이다.

벽파 선생이 기록해 놓은 북으로 가는 단체의 행선지는 서울을 떠나 원산-함흥-청진-회령-나진을 거쳐 혜산진-길주 등을 거쳐 돌아왔고, 남쪽으로 가는 단체는 부산 시내 각 극장에서 공연한 뒤, 밀양-삼랑진-마산-진해-진주-거창-김천을 거쳐 대구에서 공연을 한 다음, 다시 영천-경주-포항- 대전-천안-수원-인천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리고 호남으로 가는 단체는 대전-이리-전주-군산-남원-광주-벌교-순천-여수-보성-강진-목포 등 전라도를 순회하는 공연이었다는 것이다.

남쪽을 끝내고 다시 북으로 가는 단체는 개성을 지나 해주-사리원-평양을 거쳐, 진남포-정주-선천-신의주-강계 -만포진을 지나 중강진 까지 가는 공연코스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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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에 달한 일본 제국주의는 말기에 접어들면서 더더욱 우리 문화를 말살시키는 정책을 강행하였다. 말이나 글은 물론이고, 우리의 전통음악을 연주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래서 위문단이 판소리나 경서도창, 각도 민요, 경서도 입창, 가야금 병창, 승무, 검무 등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이면 가는 곳마다 초만원을 이루었고, 입장하지 못한 관객들이 큰 소동을 벌이는 사태까지 일어나곤 하였다고 한다.

당시 《조선악부》책임자로는 아악부 아악사장을 지낸 함화진이었고, <조선음악단> 단장에는 국악예술학교장을 지낸 박헌봉, <조선가무단> 단장에는 가무연구회장이었던 학강 최경식이었다. 음악단의 연주진용은 가야금의 심상건, 피리의 이충선, 대금의 김계선, 해금의 김봉업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쟁쟁한 명인들이었다. 또한 노래에는 남도 명창인 임유앵과 박초월, 경서도 명창에는 장채선, 이창순, 경부용, 최일송, 김송죽 등이었으며 무용수들도 참여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선가무단>소속의 명창으로는 산타령의 엄태영, 최정식, 정득만 등이 중심을 이루었고, 여자로는 이향옥, 심연홍, 박초향, 박홍도 등과 조몽실, 신영채, 신평일, 최장술 등이 활동하였으며 반주진에는 이정업, 이수길, 이일선, 허수복, 김갑룡 등이 함께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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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한 범 / 단국대 명예교수, 한국전통음악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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