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로는(白露) 24절기의 열다섯째로 이때쯤이면 밤기온이 내려가고, 풀잎에 이슬이 맺혀 가을 기운이 뚜렷해집니다. 옛 편지 첫머리를 보면 ‘포도순절(葡萄旬節)에 기체 만강하옵시고’라는 구절을 잘 썼는데, 백로에서 한가위 때까지 포도가 제철이란 뜻으로 포도순절이라 한 것입니다.
그해 첫 포도를 따면 사당에 먼저 고한 다음 그 집 맏며느리가 한 송이를 통째로 먹어야 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주렁주렁 달린 포도알은 다산(多産)을 상징하는데 조선 백자에 포도무늬가 많은 것도 같은 뜻입니다. 어떤 어른들은 처녀가 포도를 먹고 있으면 망측하다고 호통을 치시기도 하는데 역시 이 때문이지요.
부모에게 배은망덕한 행위를 했을 때 포도지정(葡萄之情)을 잊었다고 합니다. ‘포도의 정’이란 어릴 때 어머니가 포도를 한 알, 한 알 입에 넣어 껍데기와 씨를 가려낸 다음 입으로 먹여주던 그 정을 일컫습니다. 지금은 아이에게 이렇게 포도를 먹이는 어머니는 없겠지요. 포도를 먹을 때도 부모님의 사랑을 떠올리는 우리 겨레는 효에 관한 한 대단한 민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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