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엔 도읍지가 되려면 기본적으로 외적 방어에 유리한 것이 가장 중요한 조건이었습니다. 그래서 북악, 인왕, 남산, 낙산으로 둘러싸인 한양은 좋은 곳이었지요. 아무리 그렇더라도 당시는 거기에 성곽을 쌓아야 했습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는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려고 먼저 궁과 종묘, 사직을 지은 다음 성곽을 쌓기에 주력합니다. 1395년 도성축조도감이 설치되고 1396년 1월 9일 시작한 1차 축성에 이어 3년 뒤 2차 축성, 세종 3년(1421)의 3차 축성, 숙종 30년(1704)의 4차 축성까지 이어져 전체 길이는 18.2km나 됩니다. 석성과 토성으로 쌓은 성곽에는 4대문과 4소문을 두었지요.
하지만 일제강점기에는 도시계획이라는 구실로 한양성곽은 성문과 성벽이 헐렸고, 해방과 한국전쟁 때에는 더욱 많이 파괴되었습니다. 특히 1899년 서대문과 청량리 사이, 용산과 종로 사이 전철이 다니면서 성곽 일부가 헐려나갔고, 일제강점기 들어서 서대문과 혜화문이 헐리며 사실상 평지에 있던 성곽은 거의 없어져 총 길이 18.2km 가운데 삼청동, 장충동 일대의 성벽 일부와 남대문, 동대문, 광희문, 창의문만이 남아 10.5km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2006년부터 문화재청과 서울시는 한양성곽을 세계유산으로 등록하려고 가능한 한 옛 모습을 복원하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성곽을 답사하다보면 성곽을 쌓았던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진 성곽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옛사람들의 공사실명제지요. 서울성곽은 조선시대 성 쌓는 기술의 변화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며, 나라를 지키려는 조상들의 호국정신이 깃든 귀중한 문화유산입니다. 1963년 사적 10호로 지정된 한양성곽, 이제 많은 시민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는데 우리가 아끼고 보살펴야 할 사적지이지요. 가을을 맞아 우리도 성곽길을 걸어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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