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게시판/하루하루가 잔치로세(김영조)

9월 27일 - 동물원과 벚꽃을 걷어낸 창경궁을 찾아갑니다

튼씩이 2018. 9. 27. 10:04

“창경궁(昌慶宮)을 낙성(落成)하였다. 육승지(六承旨)에게 명하여 수리도감(修理都監)의 당상(堂上)과 낭청(郎廳)에게 음식을 대접하도록 하고, 이어 홍문관(弘文館) 관원도 잔치에 참여하도록 명하였으며, 이날 장인(匠人)과 군인(軍人)들에게도 음식을 먹였다.”


 

<성종실록> 170권, 성종 15년(1484) 음력 9월 27일의 기록입니다. 창경궁이 완공되어 창경궁을 짓는 데 고생한 사람들에게 잔치를 베풀어주었다는 내용이지요.

 

창경궁은 당시 살아 있었던 세 왕후(세조 비 정희왕후, 예종 비 안순왕후, 덕종 비 소해왕후)의 거처를 위해 옛 수강궁 터에 지은 궁궐이지요. 이때 창경궁 전각의 이름은 서거정이, 정전(正殿)인 명정전의 상량문은 김종직이 지었습니다. 그러나 창건 당시의 전각은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되고, 1616년에 재건되고 나서도 몇 차례 화재가 있었기에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여러 차례에 걸쳐 다시 지은 것들입니다.

 

순종 3년(1909) 일제는 궁 안의 전각들을 헐어버리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했으며, 궁의 정원모습을 일본식으로 바꾸고, 강제합병이 이루어진 뒤인 1911년에는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하기까지 했지요. 그뿐인가요? 창경궁과 종묘를 잇는 지맥을 절단하여 길을 뚫었습니다. 궁 안에는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벚꽃을 수천 그루나 심어놓고 1924년부터 밤 벚꽃놀이까지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해방 이후에도 오랫동안 관광시설로 이용되다가 1983년 12월 30일 원래의 명칭인 창경궁으로 돌아왔습니다. 1984년부터 차례로 문제 있는 시설들을 철거하고 문정전을 비롯한 건물을 복원하고 벚꽃나무도 소나무, 느티나무, 단풍나무로 바꿔 심어 원래 궁궐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창경궁에 대해서 하나 더 알아둬야 할 것은 정전인 명정전(明政殿)은 동향이며, 기둥이 둥근데 반해 편전인 문정전(文政殿)은 남향이고 네모기둥이라는 것입니다. 그 까닭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타 광해군 때 다시 지으면서 서로 다르게 지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사간원이 “문정전을 명정전과 다르게 지은 것은 정전과 구별을 하려고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문정전을 명정전과 동향으로 나란히 세우고 기둥을 둥글게 한다면 정전이 둘이 되므로 옳지 않으며, 궁궐을 고치는 데 백성에게 고통이 따르니 안 됩니다.”라며 반대해 광해군이 이에 따른 것이지요. 궁궐을 돌아볼 때도 이런 점을 생각하며 보면 훨씬 재미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