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근의 '신부신랑 초례하는 모양', 상 위에 기러기가 보인다
전통혼례를 보면 전안례(奠雁禮)라는 절차가 있습니다. 이때 신랑이 신부에게 나무로 깎은 새를 주는데 그 새는 오리도, 원앙도 아닌 기러기로 옛날엔 실제 살아 있는 기러기를 썼습니다. 이 의식은 기러기를 주어 행복한 부부생활을 기원하는 것입니다. 기러기를 받으면 신부의 시종이 치마폭에 싸서 방에 들어가 아랫목에 시루로 덮어놓습니다. 치마폭에 감싸는 것은 알을 잘 낳으라는 뜻이며, 시루로 덮는 것은 숨쉬기 좋게 하려는 뜻입니다.
《숙종실록》 11권(1681)에 "임금이 어의궁(於義宮)에 나아가서 전안례(奠雁禮)를 거행하고, 오시(午時)에 환궁하였다. 왕비가 예궐(詣闕)하여 신시(申時)에 동뢰연(同牢宴)의 예(禮)를 거행하였는데, 의절(儀節)은 한결같이 《오례의(五禮儀)》의 상의(常儀)와 같이 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임금의 혼례에서도 전안례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음양오행설에 보면 남자는 양(陽), 여자는 음(陰)으로 기러기가 남에서 북으로 날아가는 것은 양-음에 맞으며, 이로써 남녀 사이 음양이 조화됨을 상징합니다. 기러기는 암컷과 수컷이 일부일처제를 이루며, 심지어 상대가 죽어도 다시 배우자를 찾지 않기 때문에 정조를 상징하는 뜻도 있습니다. 이렇듯 기러기는 사람의 윤리 도덕과 너무도 잘 맞는다 하여 혼례식에 등장하는 것입니다. 이 가을, 많은 선남선녀가 달콤한 혼인예식을 치르는데 서로 가슴에 기러기 한 마리를 담아 두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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