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강(惠岡) 최한기(崔漢綺, 1803~1877)는 저술한 책이 1,000권에 이를 만큼 박학다식한 사람이었는데 지금 알려진 것은 모두 100권 정도이고, 실제로 남아 있는 것은 80여 권이라고 전합니다. 그의 책 가운데 ≪인정≫ 12권 <잡기를 경계함>에는 “무용(無用)한 일에 마음을 쓰는 자는 반드시 유용한 일에 소홀하고, 유용한 일에 전심(專心)하는 자는 반드시 무용한 일을 천히 여겨 버린다. 잡기에 욕심이 깊어지면 사람의 도리를 버리면서까지 즐거움에 빠지며 가산(家産)을 탕진하면서 법을 어기게 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잡기냐, 아니냐는 그것에 돈을 거느냐, 순수하게 즐기느냐에 달려 있는지도 모릅니다.
조선 후기의 판례집인 ≪심리록(審理錄)≫ 1권(1777년)을 보면 태천(泰川) 사람 양만덕(梁萬德) 이야기가 나옵니다. 내용을 보면 “양만덕 등이 돈내기를 하는데, 신봉춘(申奉春)이 돈을 구걸하자, 돈은 주지 않고 말이 불손하다고 하여 양만덕이 목 졸라 죽이고 시체를 저수지에 버렸다.”든가 위원(渭原) 사람 이명중(李明重)이 “조정화(趙丁化)와 돈내기를 하다가 치고받고 싸움을 하여 이튿날 조정화를 죽게 하였다.”와 같은 기사가 심심치 않게 눈에 띕니다. 최한기가 말한 ‘사람의 도리를 버리고 자신을 멸망의 구렁텅이로 빠지게’ 한 꼴이지요. 그런데 조정에서도 돈내기는 있었습니다.
정조실록 38권, 17년(1793) 10월 29일 “춘당대에 나아가 문무 제신들에게 편을 지어 활쏘기를 하게 했는데, 문신이 한편이 되고 무신이 한편이 되어 점수를 따져 돈내기를 한 다음, 날을 잡아 장용영(壯勇營)에서 잔치를 베풀고 놀기로 하였다.”라는 기록이 보입니다. 그러나 조정에서 대신들이 돈내기를 하게 한 것은 품격이 약간 다릅니다. 이는 흥을 돋우기 위함이지 살인을 부르는 돈내기와는 다릅니다. 이처럼 돈내기도 적당한 선을 어떻게 지키느냐에 따라 건전할 수도 건전하지 않을 수도 있지요. 농한기인 겨울이 되면 온갖 놀이도 성행합니다. 놀이는 자신의 삶을 환하게 하는 것이어야지 어둡게 끌고 가는 것이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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