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네야 네 할 일 메주 쑬 일 남았도다
익게 삶고 매우 찧어 띄워서 재워두소
11월은 중동이라 대설 동지 절기로다
바람 불고 서리 치고 눈 오고 얼음 언다
- 《농가월령가》 중 <11월령> -
24절기의 스물한째인 대설(大雪)은 말 그대로 눈이 많이 내린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지만 이 시기에 꼭 눈이 많이 오지는 않습니다. 옛사람들은 대설 초후에는 산박쥐가 울지 않고, 중후에는 범이 교미하여 새끼를 낳고, 말후에는 여주(박과의 한해살이 풀)가 돋아난다고 했지요. 한편, 이날 눈이 많이 오면 다음 해 풍년이 들고 푸근한 겨울이 된다는 믿음이 전해집니다.
농사일을 끝내고 한가해지면 콩을 삶아 메주를 쑵니다. 메주를 띄울 때는 며칠 방에 두어 말린 뒤, 짚을 깔고 서로 붙지 않게 해서 곰팡이가 나도록 띄우고 알맞게 뜨면 짚으로 열십자로 묶어 매달아 두는데 이것은 메주를 띄우는 푸른곰팡이가 번식이 잘 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장맛은 메주가 좋아야 하므로 이 시기에 메주는 집집마다 한 해 농사의 결정판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정성을 들이지요. 메주는 백성에게 닥친 가뭄이나 기근으로 고생할 때 구황식품이기도 했습니다.
《성종실록》 180권(1485)에는 경기 관찰사 어세겸이 구황품목을 여덟 가지로 조목조목 아뢰는데 그중 넷째를 보면 "말장(末醬)은 미리 인구를 헤아려 메주를 쑤게 하여서 가난을 구제하는 데 나누어주게 하소서"라는 기록이 보입니다. 쌀, 보리 같은 주식도 필요하지만 소금, 된장도 빠져서는 안 되는 중요한 먹을거리인지라 일찍이 조정에서는 메주를 구황품목에 넣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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