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해인사에는 국보 32호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 있습니다. 1995년 12월 9일은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장경판전(국보 52호)이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날입니다. 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건물도 중요하지만 실은 대장경이 더 중요하지요. 하마터면 팔만대장경이 몽땅 남의 손에 들어갈 뻔한 이야기를 오늘 해보겠습니다.
<성종실록> 244권, 21년(1490) 9월 24일을 읽어보면 “나라에서 불교를 믿지 않으니, 가지고 있은들 어디에 쓰겠느냐? 달라는 대로 주는 것도 괜찮으니 그것을 의논하여서 하라”라고 성종은 말합니다. 만일 그때 “일본에 대장경을 모두 주었다”면 어찌 했을까 생각하니 아찔합니다.
팔만대장경은 목판본이 1,516종에 6,815권으로 총 8만 1,258매이며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과 속장경(續藏經)은 몽골의 침입 때 불타버린 뒤 1236년(고종 23) 만들기 시작하여 1251년 9월에 완성되었습니다. 이는 현존하는 세계의 대장경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일 뿐만 아니라 체재와 내용도 가장 완벽한 것으로 오자(誤字)와 탈자(脫字)가 거의 없기로 유명합니다.
유교를 숭상하는 나라이기에 ‘가지고 있어봐야 쓰일 데가 없는 물건’에 자나지 않았던 팔만대장경. 일본에서는 그 가치를 일찌감치 눈치 채고 대장경을 끈질기게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려 우왕 14년(1388) 포로 250명을 돌려보내 주면서 달라고 한 것을 시작으로 조선 효종 때까지 무려 83회나 대장경을 달라고 요구해옵니다. 교토 남선사를 비롯한 도쿄의 증상사와 같이 일본의 여러 사찰에 건너가 있는 대장경이 이를 입증하고 있습니다.
고려시대 문화의 고갱이인 팔만대장경은 뛰어난 인쇄술, 서지학적인 면에서뿐만 아니라 당시의 시대상, 역사, 설화를 간직한 당대 최고의 ‘문화결집체’입니다. 이는 특정 종교의 경전이라기보다는 과거 천 년의 역사를 정리하고 미래 천 년의 지혜를 밝히는 우리 겨레의 등불로, 이제는 일반인들에게도 그 내용을 널리 읽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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