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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16대 임금 인조의 첫째 아들 소현세자(1612∼1645)는 왕세자로 책봉되었지만 병자호란(1636)으로 인해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갔다 돌아온 뒤 두 달 만에 죽었습니다. 이때 소현세자의 죽음은 조선왕조실록에 학질 때문이라고 기록되었지요. 그러나 당시 종친이었던 이세완은 세자의 주검이 검은빛이었다며 독살 가능성을 이야기 했습니다. 더구나 인조는 세자가 죽었는데도 어의의 처벌은 고사하고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쓴 채 세자의 장례도 간소하게 치러 의심을 받고 있지요.
여기서 아버지 인조가 아들 소현세자를 독살까지 한 데는 세자에게 왕위를 빼앗길 것을 두려워한 인조의 소심함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소현세자는 심양에서 조선과 청을 이어주는 외교관의 역할을 톡톡히 했음은 물론 병자호란 당시 노예로 끌려온 조선 백성들의 구해 조선으로 돌려보내는 등 큰 활동을 했습니다. 더구나 청나라에서 돌아오기 전부터 소현세자가 인조의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고 세자가 청의 고위 관료들과 친하게 지낸 탓에 청나라가 소현세자에게 왕위를 양위하라고 할까봐 불안해했기 때문에 독살했다고 보아왔지요.
그러나 소현세자의 동궁일기 4종 25책을 완역한 서울대 규장각 역주팀에 따르면 건강했던 소현세자가 청나라에서 볼모생활을 하며 화병 등 각종 질병에 시달린 끝에 ‘스트레스’로 인한 학질로 숨졌다는 기록도 있다고 합니다. 병으로 죽었음을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일기 속 처방 기록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보면 독살이 아니라 병으로 죽었을 수도 있다고 역주팀은 보는 것이지요. 조선시대 사도세자와 함께 비운의 세자로 꼽히는 소현세자, 그가 그때 죽지 않았다면 조선의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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