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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레빗) 3251. 소현세자 죽음, 독살일까, 병 탓일까?

튼씩이 2016. 3. 24. 12:07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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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4349(2016). 3. 24.



조선 16대 임금 인조의 첫째 아들 소현세자(1612∼1645)는 왕세자로 책봉되었지만 병자호란(1636)으로 인해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갔다 돌아온 뒤 두 달 만에 죽었습니다. 이때 소현세자의 죽음은 조선왕조실록에 학질 때문이라고 기록되었지요. 그러나 당시 종친이었던 이세완은 세자의 주검이 검은빛이었다며 독살 가능성을 이야기 했습니다. 더구나 인조는 세자가 죽었는데도 어의의 처벌은 고사하고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쓴 채 세자의 장례도 간소하게 치러 의심을 받고 있지요.

여기서 아버지 인조가 아들 소현세자를 독살까지 한 데는 세자에게 왕위를 빼앗길 것을 두려워한 인조의 소심함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소현세자는 심양에서 조선과 청을 이어주는 외교관의 역할을 톡톡히 했음은 물론 병자호란 당시 노예로 끌려온 조선 백성들의 구해 조선으로 돌려보내는 등 큰 활동을 했습니다. 더구나 청나라에서 돌아오기 전부터 소현세자가 인조의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고 세자가 청의 고위 관료들과 친하게 지낸 탓에 청나라가 소현세자에게 왕위를 양위하라고 할까봐 불안해했기 때문에 독살했다고 보아왔지요.

그러나 소현세자의 동궁일기 4종 25책을 완역한 서울대 규장각 역주팀에 따르면 건강했던 소현세자가 청나라에서 볼모생활을 하며 화병 등 각종 질병에 시달린 끝에 ‘스트레스’로 인한 학질로 숨졌다는 기록도 있다고 합니다. 병으로 죽었음을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일기 속 처방 기록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보면 독살이 아니라 병으로 죽었을 수도 있다고 역주팀은 보는 것이지요. 조선시대 사도세자와 함께 비운의 세자로 꼽히는 소현세자, 그가 그때 죽지 않았다면 조선의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옛 얼레빗 (2012-03-28)


2277. 아니 너도바람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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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라니 봄바람에 가냘프게 핀 너는 / 어찌 그리 자매가 많더냐 / 변산바람꽃 국화바람꽃 꿩바람꽃 들바람꽃 외대바람꽃 숲바람꽃 매화바람꽃 나도바람꽃 / 아니 너도바람꽃이라고? / 이리 오너라 어디 보자 / 흰 옷에 살랑이는 너의 속살 / 뭇 사내의 가슴을 녹일 꽃술 / 한 떨기 아름다운 바람꽃 이어라! -송 원 ‘너도바람꽃’-

겨울을 보내고 숲은 봄을 맞았습니다. 하지만, 아직 쌀쌀한 꽃샘바람이 붑니다. 저 황량하게만 보이는 숲에 또다시 꽃은 필까요? 그런데 숲으로 들어가면 반갑게도 가장 낮은 곳부터 점점이 뿌려진 하이얀 꽃들이 보입니다. 햇살에 앙증맞게 기지개를 켜는 바로 “너도바람꽃”입니다. 아직 숲은 쌀쌀한데 어찌 이리도 빨리 꽃을 피웠을까요? 어쩌면 너도바람꽃이 피어야만 봄이 오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너도바람꽃”은 숲 속 반그늘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고개를 숙여야 보이는 10- 15cm의 키 작은 꽃입니다. 눈을 뚫고 3-4월에 지름 2cm 정도의 앙증맞은 흰색 꽃이 피지요. 물론 가장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꽃으로 변산바람꽃을 드는 사람이 많지만 굳이 전북 변산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는 가까운 숲에서 너도바람꽃을 즐겨도 됩니다. 이제 봄바람을 맞으며 가까운 숲길로 너도바람꽃을 맞으러 갈까요?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소장 김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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