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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사는 것 열 가지를 그린 것을 우리는 “십장생도(十長生圖)”라고 합니다. 그런데 열 가지가 안 되면 그저 장생도(長生圖)라 부르고, 한 가지씩 그린 것이면 군학십장생도(群鶴十長生圖), 군록십장생도(群鹿十長生圖)처럼 부르기도 하지요. 십장생으로는 보통 해,구름,뫼(산),물,바위,학,사슴,거북,소나무,불로초를 꼽지만 그밖에 대나무와 천도 (天桃)를 그리기도 합니다.
보통 가운데에 사슴이나 학들을 그리고 왼편에 바다와 거북을 그리는데 아름다운 빛깔을 최대한 살려 상상 속의 선계(仙界)를 묘사하며, 대체적으로 8~10폭으로 된 병풍 그림이 많습니다. 새해에 임금이 신하들에게 장생도를 선물로 내렸다고 하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십장생도는 주로 왕실 등에서 세화(歲畵, 새해를 송축하고 재앙을 막기 위해 그린 그림)와 축수용(祝壽用, 오래 살기를 빎) 그림으로 주로 쓰였음을 알 수 있지요.
십장생도는 그림뿐 아니라, 조선시대의 도자기, 나전공예품,목공예품, 자수 작품, 벼루는 물론 건물 벽의 장식 등에 광범위하게 쓰였는데 바로 경복궁 아미산(娥嵋山)의 굴뚝에도 돋을새김(부조)된 장생무늬가 있습니다. 여기 십장생도 병풍은 서울역사박물관에 있는 것으로 19세기 조선 말기 궁중에서 제작된 10폭 병풍으로서 소장 경위가 확실하고, 구도, 화법, 채색, 보관상태 등이 매우 좋아 가치 있는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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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악속풀이 25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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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이 끊길 뻔한 재담소리, 백영춘ㆍ최영숙 등이 살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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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효국악문화재단 기획공연 백영춘-최영숙의 “소리의 맥(脈)”Ⅱ
지난주에는 정효재단 설립기념으로 기획된 백영춘과 최영숙이 준비해 온 공연- <박춘재, 이창배 제, 소리의 맥(脈)을 찾아서>와 관련된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 공연은 2016년 3월29(화)부터 7월12일까지 4개월에 걸쳐 진행된다는 점, 경기, 서도지방에 전승되고 있는 민요와 재담소리의 저변확대를 위한 특별 기획된 시리즈로 마련되었는데, 여기에는 공연은 물론이고, 명창이 지도하는 경서도창의 실습 참여와 대화의 시간도 갖게 된다는 점을 얘기했다.
특히 3월 29(화), 오후 7시에 예정되어 있는 개막 공연은 “아리랑과 재담소리”로 준비하였다는 점, 낯선 이름 <정효국악문화재단>은 국공립 재단이 아니라 사설의 문화재단으로, 이는 평소 국악을 애호해 오던 어느 독지가가 국악의 저변확대를 위해 서초동에 3층 건물을 마련하고 1층은 공연장, 2층은 국악박물관, 3층은 경서도창악회와 재담소리보존회원들이 모여 자유롭게 연습과 공연이 용이하도록 공간을 마련해 준 것이라는 점, 국악인들이 발표무대를 갖고 싶어도, 극장대여 사정이 여의치 않아 포기하는 예가 허다했는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게 되어 매우 고맙고 다행이라는 점을 말했다.
또 이사장 김정석 씨는 전통민요 애호가로 최영숙의 소리를 듣고 그의 학원을 찾았을 때, 작고 좁은 열악한 환경을 보고 이들을 위해 그리고 나아가 보다 많은 주위 국악인들에게 무대나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설립하였다는 이야기도 하였으며 설립 기획공연으로 백영춘과 최영숙이 준비한《박춘재, 이창배제 소리의 맥(脈)을 찾아서》를 올리게 되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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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대부분의 예술인들, 특히 국악인들이 겪는 어려움의 하나가 무대를 구하기 어렵다는 점일 것이다. 웬만큼 알려진 유명 공연장은 어찌 된 영문인지 차례가 오지 않아 빌리기가 어렵고, 설사 성사된다고 해도 대관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불평이 높다. 무대뿐 아니라, 조명이나 음향, 의상, 소도구 등등 의 대관비가 적정수준을 넘고 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울며 겨자 먹기’식의 대관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국악인들이 설 수 있는 무대가 매우 좁다는 사실은 수요자는 많은데 공급이 이를 따라주지 못하는 현상에서 빚어진 것이니 만큼 발표무대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큰 극장 뿐 아니라 소극장의 활용도 점점 많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서초동에 작은 공간이 마련되고 국악인들에게 대여가 가능하다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동 문화재단의 설립을 진심으로 환영하며 또한 고마움도 표하는 바이다.
동 재단의 설립기념으로 마련된 기획공연“소리의 맥(脈)”이란 무슨 뜻이고,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공연인가?
공연의 기획자인 백영춘이나 그의 제자 최영숙의 의중에는 1910년대 이후 박춘재(朴春載) 명인에 의해 연행되던 재담(才談)소리가 현재는 서울시 문화재로 지정이 되었으니 이를 보다 좋은 환경에서 충실히 이어가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는 것이다. 더불어 1950년대부터 이창배(李昌培) 명인으로부터 전수받은 경서도 소리를 더 올곧게 지켜가고자 하는 결의를 다지는 의미도 담고 있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박춘재가 즐겨 부르고 공연하던 재담소리란 무엇인가? 재담이란 단순하게 말재주나 말장난이 아니다. 줄거리가 있는 이야기를 고정관념을 탈피하여 익살과 해학으로 상황에 맞도록 재미있게 진행해 나가면서 소리와 춤, 연기로서 관객을 울리고 웃기는 민속극의 한 장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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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담소리의 명인 박춘재는 구한말 재담과 소리로 유명했던 경기명창이었는데, 어느 정도 그가 유명한 명인이었는가 하는 점은 1900년대 초, 당시의 노래들을 모아적은 잡가집(雜歌集)에 그를 가리켜 ‘조선제일류가객(朝鮮第一流歌客)이라고 당당히 기록되어 있을 점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만큼 그는 경기소리의 대가이면서 재담과 발탈의 일인자로 유명했던 인물이다. 또한 소리와 함께 장고 연주도 일품이었다고 전해진다.
1910년, 한일합방 이후, 간악한 일제는 우리의 주권을 완전히 빼앗고 식민지화 했기에 조선의 민중들은 웃음을 잃게 되었다. 이러한 시점에서 당시 광무대극장이나 원각사 등지에 박춘재의 재담소리가 열린다고 하면, 민중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환호와 박수갈채를 보냈다고 한다. 그의 재담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겠는가 하는 점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광복 뒤에는 다른 장르에 가려져 점차 쇠락하기 시작하였고, 60년대 이후에는 이를 계승 하려는 전승자가 없어 단절위기를 맞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행이 정득만 명창이나 몇몇 소리꾼들이 박춘재의 사랑방에 드나들며 틈틈이 익힌 재담을 백영춘에게 전해주었고, 백영춘은 이러한 토막소리를 이어받고 그 위에 당시의 음반자료나 녹음자료, 또는 원로들의 구술자료와 문헌자료 등을 활용하여 1910년대 이후의 재담소리를 완전하게 재현할 수 있었다. 전승자가 없어서 단절 위기를 맞고 있으면서 토막소리로 전해오던 재담을 제대로 살려낸 것이다.
그 결과, 현재 재담소리는 서울시 무형문화재로 지정이 되었고, 시 당국의 보호아래 전승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현재는 백영춘 보유자와 그의 큰 제자들인 최영숙이나 노학순 등을 비롯하여 여러 전승자들이 이어가고 있어서 우리가 당시의 재담소리가 어떤 형태의 내용인가를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번 공연에도 <장대장타령>을 비롯한 <장님타령>, <장사치흉내>, <개넋두리> 등 서울의 대표적인 작품들이 올려 질 계획이어서 기대가 되고 있다.
재담소리뿐 아니라, 백영춘과 최영숙 등은 1950년대 이후부터 이창배 사범에게 경서도 소리를 배워 오늘날까지 그 노래들을 부르고 있으며 제자들을 양성하고 있는 것이다.‘경서도(京西道)’소리란 글자 그대로 서울, 경기는 물론 서도지방 곧 황해도나 평안도 지역의 좌창과 입창, 통속민요를 포괄하는 명칭인 것이다. 그들의 스승 이창배 사범은 민속음악, 그 중에서도 경서도 민요를 소리로 지켜온 대 사범이었다. 일제의 강제합방 이후, 불행하고 암울했던 시대에 태어나 경서도의 좌창과 입창을 소리로 익히고, 문자로 기록해 온 명창이며 학자요, 교육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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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한 범 / 단국대 명예교수, 한국전통음악학회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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