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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레빗) 3256. 제주도 농부들이 썼던 "정당벌립"

튼씩이 2016. 3. 31. 10:36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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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4349(2016). 3. 31.



“정당벌립”은 제주도 사람들이 밭일을 하거나 소나 말을 키울 때 썼던 댕댕이덩굴패랭이로 정동벌립, 정동벙것이라도 부릅니다. 이 모자는 맥고모자(麥藁帽子)라고도 부르는 밀짚모자와 모양이나 기능이 비슷하지만 밀짚모자와 달리 머리가 모자 속으로 푹 들어가지 않고 머리 윗부분에 얹히게 만들어 상투를 보호해주는 점이 다르지요. 이 정당벌립도 차양이 넓은데, 대신 윗부분을 말총으로 만든 총모자는 작고 뾰족한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정당벌립은 특히 말이나 소를 치는 사람들에게 아주 이상적인 모자입니다. 그 까닭은 정당벌립에 가시가 걸리더라도 가시는 모자에 닿자마자 미끄러져 모자가 벗겨지지 않고 머리나 얼굴이 가시에 긁힐 일이 없기 때문이지요. 뿐만 아니라 여름에는 갈옷과 함께 따가운 햇볕을 피하게 하고, 비오는 날에는 새풀로 엮은 도롱이와 함께 입어 유용합니다. 숲이 우거진 한라산을 누비며 살아야 했던 제주도 사람들의 생활에 적합한 모자지요.

정당벌립은 한라산에 자생하는 댕댕이덩굴로 만듭니다. 댕댕이덩굴 줄기는 내구성이 강하고 탄력성이 좋을 뿐 아니라 물에 젖으면 잘 구부러져 풀공예에 적합한 재료지요. 또 줄기의 지름이 2㎜ 이하여서 공예품을 만들면 섬세한 짜임이 되고 질감이 좋아 예로부터 이 덩굴로 삼태기,수저집,바구니,채반 따위를 만들어 썼습니다. 정당벌립을 만드는 장인은 제주도 시도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었는데 현재 기능 보유자는 홍만년 선생입니다.

옛 얼레빗 (2012-04-02)


2279. 인왕산 남쪽 기슭 필운대는 무릉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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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원경(桃源境)”은 “복숭아꽃 피는 아름다운 곳. 곧 속세를 떠난 이상향”을 뜻합니다. 이와 같은 뜻의 말로 “무릉도원”이란 것이 있습니다. “무릉도원(武陵桃源)”은 신선이 살았다는 전설적인 중국의 명승지, 곧 속세를 떠난 별천지를 뜻하지요. 결국, “무릉도원”이란 옛 사람들이 꿈꾸던 아름다운 세상인데 이를 묘사한 그림들이 많습니다. 특히 일본 덴리대학(天理大學) 중앙도서관에 소장된 조선 초기 화가 안견(1418 ~ 1452)의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는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안견의 “몽유도원도” 못지않은 또 다른 아름다운 그림들이 있습니다. 바로 조선 후기 서화가로 시·서·화에 뛰어나서 '삼절(三絶)'이라 일컬어졌던 임득명(林得明, 1767~?)의 “등고상화(登高賞花)”와 진경산수화로 유명한 정선(鄭敾, 1676~1759)의 “필운대상춘(弼雲臺賞春)”이 그것입니다. 어느 따뜻한 봄날 선비들이 인왕산 남쪽 기슭 필운대에 올랐습니다. 이들은 필운대에서 봄 경치를 마음껏 즐깁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유득공 시에 보면 “도화동 복사꽃 나무 1천 그루나 되는 것이…”라고 하여 필운대 근처가 복사꽃 천지였음을 말해줍니다.

그런데 조선시대 화가들은 어떻게 이런 아름다운 무릉도원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사는 곳이 바로 무릉도원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지요. 봄만 되면 언제나 그들은 복사꽃 꽃보라에 꽃멀미를 하던 사람들이기에 붓을 물 흐르듯 놀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은 복사꽃 한그루 없는 도시에서 살고 있어 그림은커녕 상상력도 메말라버리고 말았지요. 한국의 대표적인 건물인 국회의사당 주변에서 벚꽃 대신 흐드러진 복사꽃을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제 복사꽃은 옛 그림 속에서나 볼 수 있는 듯하여 아쉽기만 합니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소장 김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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