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얼레빗) 3469. 봄은 보이는 것 밖에도 있다네

튼씩이 2016. 4. 19. 14:36

날마다 쓰는 한국문화 편지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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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4349(2016). 4. 19.



林華香不斷 숲 속에는 향기가 끊이지 않고
庭草綠新滋 뜰 풀은 새롭게 푸르름이 더해지지만
物外春長在 보이는 것 밖에 언제나 있는 봄은
惟應靜者知 오직 고요한 사람이라야 알 수가 있지

위는 조선후기 때 박제가(朴齊家)이덕무(李德懋)유득공(柳得恭)과 더불어 사가시인(四家詩人) 가운데 한 사람인 척재(齋) 이서구(李書九, 1754~1825)의 한시 “봄이 머무는 마을”입니다. 지금 숲은 온갖 꽃들이 흐드러져 한 폭의 수채화인 듯합니다. 꽃보라 속에서 꽃멀미도 한창일 때고요. 그러나 척재는 보이는 것 밖에 언제나 있는 봄도 있다고 합니다. 다만 그 봄은 오직 고요한 사람이라야 알 수가 있다고 하지요. 그 봄을 만나기 위하여 스스로 고요한 사람이 되도록 해야 할 일입니다.

척재는 어려서 어머니를 잃은 외로움 탓에 벼슬보다는 숨어서 살기를 즐겼습니다. 더구나 아들이 없이 늙어가고 벼슬 한 일을 평생의 애석한 일로 여겼다고 하지요. 척재의 시는 그의 개인적 성향 탓에 부드럽고 사람 냄새가 나는 것은 물론 사색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조용한 마음으로 사물을 바라보면서 담담하게 정신세계를 표현하고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오늘은 이승만 정권의 장기 집권을 위한 조직적 부정 선거에 항의한 4·19혁명날입니다. 화려한 봄꽃 사이에 자칫 잊기쉬운 '보이는 것 밖의 정의'를 생각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 滋 : 붙을 자, *惟 ; 생각할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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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악속풀이 259 >

백영춘, 경연대회장에서 벽파 선생의 부름을 받다



지난주에는 재담소리를 복원하여 서울시 무형문화재로 지정을 받은 백영춘은 어떤 인물인가? 어떤 인연으로 소리꾼이 되었을까? 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를 따라 장터에서 무나 배추 또는 파를 단으로 묶어 파는 일을 돕기도 했는데, 파 단을 셀 때 단순하게 수량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가락이나 장단을 넣어 구수하고 음악적이어서 주변에 널리 알려졌다는 이야기, 그 소리를 듣기 위해 일부러 시장에 나오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여서 시장 내에서 밖으로 이름이 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 한국 장단(長短)은 3분식 구조인데, <장-단>의 단조로운 구조보다는 중간에 <단 장->으로 변화를 주어야 재미가 있다는 이야기, 백영춘은 작업장에 갈 때면 늘 라디오를 지니고 다니면서 당대 명창들의 소리를 놓치지 않고 따라 불렀다는 이야기를 겻들였다.

그가 좋아했던 명창 중에서 장학선(1905~1970)에 대해서는 1920년대 초, 다나베가 쓴‘대동강주유기(大同江舟遊記)’에 나오는데, 대동강에서 4인의 기생과 뱃놀이를 할 때, 제일 소리가 뛰어나 인상적이었던 사람이 15세의 장학선(張鶴仙)이었다는 이야기, 그녀는 10세 때 평양 관우물 소리방에서 노래를 시작했고, 14세 때부터는 평양의 기성권번에 입학하여 본격적으로 김밀화주(金蜜花珠) 명창에게 소리를 배웠다는 이야기, 그는 훗날 월남하여 중요무형문화재 29호 서도소리의 초대 예능보유자가 되었던 서도소리의 대명창이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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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춘이 심취해서 듣던 라디오속의 명창들 가운데는 장학선 외에도 이반도화(李半島花), 이정렬, 이부용, 장금화, 등 김밀화주의 제자들로 쟁쟁한 명창들이 많았다. 현재 남한에서 전통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서도소리의 뿌리는 김밀화주의 소리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 그의 소리는 평양 기성권번 출신인 장학선과 그의 선후배들이 이어 받았고, 장학선의 소리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인정된 것이다. 그의 후계는 김정연과 오복녀 등이 보유자가 되어 활동하다가, 현재는 이들의 제자들이 그 소리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다나베 일행을 감동시킨 장학선의 소리에 대해 조금 더 들여다보기로 한다.

그들을 태운 배가 대동강을 미끄러져 가는 동안에 4명의 기생들은 번갈아 가며 노래를 불렀다고 하는데, 그 중 가장 예쁜 목소리를 가진 기생은 장학선이었고, 그가 부른 소리는 부벽루 절벽을 부딪치고 강 위로 널리 널리 퍼져나가 더더욱 환상적인 소리로 되돌아 왔다고 한다. 감동을 받은 다나베는 노래가 끝난 뒤, 노랫말의 뜻을 옆에 앉아 있던 다른 기녀에게 물었다고 하는데, 그녀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조용히 붓으로 써 주었다고 한다.

“세월은 흘러, 봄은 다시 돌아 왔구나.
하늘은 세월을, 사람은 수(壽)를 더해, 봄은 천지에 가득하고,
복(福)은 집 안에 충만한데, 어찌하여 세상의 인심은 날마다
날마다 이렇게 변해 가는가.”

장학선이 부른 노랫말의 내용이 너무도 시적(詩的)이어서 공감이 크다. 백영춘에게 소리의 길을 가도록 커다란 영향을 준 명창 가운데 한 사람이기 때문에 소개하였다.

경서도 소리의 아름다움을 전해주었던 명창들은 장학선 외에도 이정열, 이반도화, 이진홍, 이소향, 유개동, 김옥심, 이창배, 정득만과 같은 사람들이었는데, 이들은 1900년대 초 한일강제합병 앞뒤에 태어나서 어려운 시대를 소리와 함께 살다간 진정한 예능인들이었다. 장학선 이외의 명창들에 관해서는 또 다른 기회에 소개하기로 하고 다시 백영춘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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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라디오를 들으며 소리를 따라 부르던 백영춘에게 그동안의 연마한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모 방송국의 간판 프로그램이었던 ‘민속의 잔치’에서 대회 출전자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광고를 보게 되었고, 마침내 그는 대회에 출전하기로 결심을 하게 된다. 제대로 선생을 모시고 발성이나 발음 등 노래의 기초에서부터 하나하나 쌓아 올린 것이 아니고, 타고난 끼와 목구성으로 명창들의 소리를 그저 많이 듣고 배운 모방의 소리였기에 기초가 튼실하지 못한 것은 분명하나 나름대로 최선을 다 했다.

대회당일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가 부른 민요는 ‘도라지’와 ‘노들강변’이었다. 그것도 그가 가장 좋아했던 경기 명창 김옥심이 부르던 스타일로 익혀서 감정을 넣어 맛깔스럽게 불렀다고 한다. 김옥심 명창이라면 당대 경서도민요계에서는 누구나 알아주던 시원하면서도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닌 명창이었다. 특히 크게 인기를 끌었던 <정선아리랑>은 아직도 그 소리를 뛰어 넘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는 평가를 받고 있을 정도로 듣는 이의 마음을 완전하게 사로잡고도 남을 정도의 대단한 인기를 누리던 소리꾼이었다.

김옥심 명창에게 제대로 배운 소리도 아니고 단지 라디오로 듣고 익힌 백영춘이 경연대회에 나가 당당하게 부른 것이다. 순전히 타고난 끼와 재주를 믿고 도전한 것이다. 무대 뒤에서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당일 심사를 맡았던 벽파 이창배(1916~1983)사범이 백영춘을 불러 소리를 제대로 배우면 대성할 소리꾼이니 당신이 운영하고 있는 <청구고전성악학원>을 찾아오라고 조언해 주었다는 것이다.

백영춘의 소리목이 구성지고 음이나 장단, 시김새의 처리 등 음악적 재주가 범상치 않다는 평가와 함께 선생의 제자가 되 줄 것을 요청한 것이다.

마다할 이유가 있는가! 그렇게 만나기도 어려운 대 사범 앞에서 소리를 했고, 또한 재주를 인정받았으며 제자가 되겠다면 받아주겠다는 사범의 권유에 다음날 단숨에 뛰어갔다. 벽파선생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그곳에서 그렇게도 꿈에 그리던 김옥심 명창(1925~1988)도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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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한 범 / 단국대 명예교수, 한국전통음악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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