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내일은 대부인 마님도 나설 만큼 바쁜 상강입니다

튼씩이 2015. 11. 6. 14:32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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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4348(2015). 10. 23.



“모롱이 개암 열매 제풀에 떨어지고
상강도 주춤주춤 잰걸음을 치는 저녁
부뚜막 개다리소반엔 시래깃국 두 그릇
노부부 살강살강 그릇을 비우는 사이
빈 마을 휘돌아 온 살가운 바람 한 올
홍적세(洪績世) 까만 시간을 되짚고 돌아왔다“

위 시는 상강 즈음을 노래한 정용국 시인의 “아득하다”입니다. 내일은 24절기 가운데 열여덟째 절기 “상강(霜降)”이지요. “상강”은 ‘서리가 내린다.’는 뜻인 것처럼 이때는 무서리가 하얗게 내리며, 만산홍엽(滿山紅葉) 단풍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1961년 10월 24일 자에 보면 “누렇게 시든 가로수 잎들이 포도 위에 딩굴고, 온기 없는 석양이 삘딩 창문에 길게 비쳐지면 가을도 고비를 넘긴다.”라며 상강을 얘기하지요.

〈농가월령가〉에 보면 “들에는 조, 피더미, 집 근처 콩, 팥가리, 벼 타작 마친 후에 틈나거든 두드리세……”라는 구절이 보이는데 가을걷이할 곡식들이 사방에 널려 있어 일손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가을에는 부지깽이도 덤빈다." "가을 들판에는 대부인(大夫人) 마님이 나막신짝 들고 나선다."라는 말이 있는데, 쓸모없는 부지깽이도 필요할 만큼 바쁘고 존귀하신 대부인까지 나서야 할 만큼 곡식 갈무리로 바쁨을 나타낸 말들입니다. 또 이때부터는 슬슬 겨우살이 채비를 서둘러야 합니다.

옛 얼레빗 (2011-10-26)


2188. 자신의 머리털을 잘라 내조한 시인 삼의당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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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하나가 두 곳을 비추는데
두 사람은 천 리를 떨어져 있네
원컨대 이 달 그림자 따라
밤마다 임의 곁을 비추었으면"

위 노래는 삼의당 김씨가 지은 ‘가을 달밤(秋夜月)’이라는 시입니다. 남편을 과거 시험장에 보내고 그리워하며 지은 시이지요. 진안 마이산 탑사로 오르는 길목에는 삼의당 김씨와 남편 하립을 기념하는 큼지막한 부부 시비(詩碑)가 서 있습니다.

삼의당(三宜堂) 김씨는 1769년(영조 45) 10월 13일 전라북도 남원 누봉방(樓鳳坊)에서 태어나 같은 마을에 살던 담락당(湛樂堂) 하립과 18살에 혼인하게 됩니다. 이들 부부는 나이는 물론 생일과 태어난 시도 같아 하늘이 점지해준 배필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혼인 첫날밤 칠언절구 사랑의 시를 주고받을 정도로 부부금실이 아주 좋았지요. 또 이 부부는 중년 무렵 선영(先塋)을 지키려고 진안 마령면(馬靈面) 방화리(訪花里)로 이사하여 이 마을에서 시문을 쓰면서 일생을 마칩니다.

삼의당은 집안 형편이 어렵자 자신의 머리털을 자르기도 하고 비녀를 팔면서 남편이 과거준비에 전념하게 했으나 남편은 끝내 등과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는 평생 남편을 원망하지 않고 학문에 힘쓰도록 권했으며 본인 스스로 시문에 힘써 유고집인 《삼의당고(三宜堂稿)》2권을 남기는데 여기에는 시 99편과 19편의 산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삼의당 김씨는 조선 중기의 시인이자 이율곡의 어머니인 신사임당(1504~1551), 남편의 학문적 자세를 격려하고 용기를 주던 강정일당(1772~1832)과 함께 시문학에 빼어나면서도 가문의 발전을 위해 헌신한 여성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소장 김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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