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뽕나무는 추위에 견디는 힘이 좋아 온 나라 어디서나 잘 자라며 6월에 꽃이 피고 열매로 오디가 열려 어린 시절 군것질이 없던 때는 이것을 따먹어서 입가가 새까맸던 경험을 한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봉양리에는 나이 500년 된 뽕나무(강원도 기념물 제7호)가 있는데 서울에서 벼슬살이를 하던 제주 고 씨가 관직을 버리고 정선으로 내려오면서 옮겨다 심은 것으로 자그마치 높이가 25m, 둘레 2.5m로 온 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뽕나무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창덕궁 안에도 이 보다는 작지만 나무높이 12m의 뽕나무(천연기념물 제471호)가 있습니다. 창덕궁 뽕나무는 모습이 단정하고 아름답기로 이름났습니다. 이렇게 궁궐에 뽕나무를 심은 까닭은 ‘농상(農桑)’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농사와 함께 뽕나무로 누에를 쳐 비단을 짜는 일이 조선시대 나라의 큰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궁궐에 뽕나무를 심은 첫 기록은 《태종실록》 9년(1409) 3월 1일에 ‘창덕궁을 지은 뒤 태종 9년 중국 주(周)나라 성왕(成王)의 공상제도(公桑制度)를 본떠 궁의 정원에 뽕나무를 심도록 명했다’는 기록이 보입니다.
양잠은 예로부터 나라의 귀중한 산업으로 왕실에서는 뽕나무를 매우 종요롭게 여겨왔으며 일제강점기인 1911년 창덕궁 후원 주합루 옆 서향각에 조선총독부가 양잠소로 만들고 친잠례를 거행한 기록이 있습니다. 주합루에서도 1925년 6월 17일을 비롯한 여러 날에 친잠례 기록이 있지요. 이 보다 앞서 《태종실록》과 《성종실록》 따위에서 왕이 승정원에 양잠의 중요성을 말하고 후원에 뽕나무를 심도록 했으며 후원에서는 왕비가 친히 누에를 치도록 했습니다. 한편, 사람에게 처음 누에치는 법을 가르쳤다는 양잠의 신 서릉씨(西陵氏)에게 제사를 지내는 친잠례(親蠶禮)도 있었지요. 지금 들녘에는 뽕나무들이 한창 푸른 잎을 뽐내고 있을 계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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