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얼레빗) 3292. 오늘은 소만, 대나무기 누래지는 “죽추” 계절

튼씩이 2016. 5. 20. 09:10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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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4349(2016). 5. 20.



오늘은 24절기 여덟째 “소만(小滿)”입니다. 소만이라고 부른 것은 이 무렵에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점차 자라 온 세상에 가득 차기[滿] 때문입니다. 또 이때는 이른 모내기를 하며, 여러 가지 밭작물을 심지요. 소만에는 씀바귀 잎을 뜯어 나물을 해먹고, 죽순을 따다 고추장이나 양념에 살짝 찍어 먹는 것도 별미입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여름에 접어드는데 들판에는 밀과 보리가 익고, 슬슬 모내기 준비를 합니다. 또 이때 이 산에서는 뻐꾸기가 울어대며, 아카시아와 찔레꽃 향기는 바람을 타고 우리의 코끝을 간지럽힙니다.

그런데 소만 때는 온 천지가 푸르름으로 뒤덮이는 대신 죽순에 모든 영양분을 공급해준 대나무만큼은 푸른빛을 잃고 누렇게 변합니다. 봄의 누래진 대나무를 가리켜 대나무 가을 곧 “죽추(竹秋)”라 하는데 이는 마치 어미가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어린 자식에게 정성을 다하여 키우는 것과 같습니다. 또 만물은 가득 차지만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구황식품을 구해야 할 때입니다. 그래서 소만은 우리에게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따뜻함이 있으면 차가움도 있으며, 가득 차 있으면 빈 곳도 있다고 가르쳐 줍니다.

참고로 음력 5월 13일(양력 6월 17일)은 죽취일(竹醉日)입니다. 이날은 대나무가 술에 취해 정신을 잃어버린다 하여 대나무를 옮겨 심습니다. 대가 취해서 어미 대에서 새끼 대를 잘라내도 아픈 줄 모르고, 어미 곁에서 멀리 옮겨 심어도 어미 곁을 떠나는 슬픔을 알지 못한다는 믿음이 전하지요. 유만공(柳晩恭)의 《세시풍요(歲時風謠)》에 “5월 13일을 죽취일이라 하여 대나무 생일이라 하고 대나무를 옮겨 심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남쪽 지방에서는 죽취일을 단오제보다 더 큰 명절로 꼽았는데 대나무를 심고 죽엽주를 마시며, 화전놀이와 폭죽놀이로 마을의 안녕과 화합을 빌었다고 하지요.


옛 얼레빗 (2012-05-22)


2310. 백자와 함께 조선을 대표하는 분청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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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도자기에는 고려청자와, 분청사기, 그리고 조선백자가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분청사기는 무엇을 말할까요? “분청사기(粉靑沙器)”는 고려청자에서 조선백자로 이어지는 중간 시기인 15~16세기에 번성했던 도자기입니다. 분청사기는 청자유약을 바르기 때문에 고려청자의 전통을 이은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분청사기는 굽기 전에 백토를 바른 다음 초벌구이를 한 뒤 청자유약을 발라 본구이를 한다는 것이 고려청자와 다른 점입니다.

“분청사기(粉靑沙器)”는 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沙器)의 준말로 맨 처음 이 이름을 쓴 사람은 한국의 첫 미술사학자인 고유섭 선생입니다. 분청사기 종류를 보면 도장으로 찍어 무늬로 새긴 인화무늬[印花文], 철분이 섞인 물감으로 흑갈색을 띠는 그림이 그려진 철화무늬[鐵畵紋], 백토물에 덤벙 담갔다가 꺼낸다 하여 이름이 붙은 덤벙무늬, 넓고 굵은 붓으로 백토를 발라 무늬를 그린 귀얄무늬 따위가 있습니다.

분청사기의 무늬들은 즉흥적이면서도 세련된 것인데 500년 전에 빚은 도자기라고 하기엔 너무나 현대적이란 평을 듣습니다. 미술사학자 고 최순우 선생은 분청사기를 “가식 없는 소박한 매무새, 허탈한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탐닉스러운 힘, 시작된 곳도 끝난 데도 모르는 어수룩한 선, 익살스러우면서도 때로는 눈물겨운 모습”이라고 표현합니다. 또 미술사학자 안휘준 선생은 “대량생산의 조건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표현의 즉흥성과 유연성이 뛰어나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미적 효과를 내는 ‘미의 경제학’이 실천된 것이 분청사기”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주말 즉흥적이지만 소박하면서도 세련된 무늬의 분청사기를 보러 박물관 나들이 어떠세요?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소장 김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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