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얼레빗 4326호) 경복궁 중건공사 때 식당주인 식비 떼먹어

튼씩이 2020. 4. 27. 08:09

조선은 모든 국가적 행사를 기록으로 남겼기에 기록의 나라라고 불립니다. 이러한 기록에는 물론 궁궐을 지을 때도 예외는 아니었지요. 궁궐 영건(營建) 곧, 나라가 궁궐 등을 짓는 것은 국가의 운영을 계획하여 짓는 일로 궁궐, 종묘, 사직단, 성곽 등에 유교 통치 이념을 담아 건축하였습니다. 궁궐 영건에는 처음 짓는 것은 물론 보수하거나 고쳐 짓는 중건(重建)과 수리(修理), 그리고 옮겨 짓는 이건(移建) 등 크고 작은 공사가 포함되며 별도의 영건도감을 설치하여 체계적으로 완수하였지요.

 



《영건일감(營建日鑒)》, 1867년, 종이에 먹(필사본), 26.5×17.0cm, 토지주택박물관 소장 


▲ 《영건일감(營建日鑒)》, 1867년, 종이에 먹(필사본), 26.5×17.0cm, 토지주택박물관 소장



지난 2016년 12월 6일부터 2017년 2월 19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영건(營建), 조선 궁궐을 짓다」 특별전이 열렸는데 이 특별전에 전시된 유물 가운데는 《창덕궁영건도감의궤(昌德宮營建都監儀軌)》(보물 제1901-2호 《조선왕조의궤》의 1책)를 비롯한 《영건의궤》, 경희궁을 그린 ‘서궐도안(西闕圖案)’(보물 제1534호), 고종년간 경복궁 중건에 관해 기록한 《영건일감(營建日鑒)》, 덕수궁 중건공사에 대한 문서 묶음인 ‘장역기철(匠役記綴)’ 등이 있었는데 이 가운데 눈길을 끌었던 것은 1865년(고종 2) 2월부터 1867년(고종 4) 12월까지 경복궁 중건 내용을 기록한 《영건일감(營建日鑒)》입니다.

 

이 책에는 당시 중건공사에 들어간 각종 자재와 인력을 여러 관청이나 지방에서 조달하는 과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을축년(1865) 7월 기록에 석수(石手)의 식사를 담당하는 식당주인 박학심이 미리 지급한 식비를 떼어먹은 내용의 기록은 물론 정묘년(1867) 7월의 기록에는 도망간 석수들의 명단을 기록하여 밤낮 가리지 말고 데려와 공사에 폐해가 미치지 않도록 하라는 내용 등이 들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의궤만으로는 알기 어려운 조선시대 영건공사의 세세한 기록들을 살펴볼 수 있게 해줍니다.

 



<장역기철(匠役記綴)>, 1904~1907년, 종이에 먹, 40×28cm,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 <장역기철(匠役記綴)>, 1904~1907년, 종이에 먹, 40×28cm,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