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얼레빗) 3308. 노비 정초부, 주인의 스승이며 벗이었다

튼씩이 2016. 6. 13. 08:11

날마다 쓰는 한국문화 편지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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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4349(2016). 6. 13.



몇 년 전 성균관대학교 안대희 교수는 조선 정조 때 노비 정초부(鄭樵夫, 1714∼1789)의 한시집 《초부유고(樵夫遺稿)》를 발굴했습니다. 이 《초부유고》는 고려대도서관에 필사본 형태로 소장 중이며 여기에 한시 90수 정도가 실렸는데 정초부를 포함해 정약용ㆍ박제가ㆍ이학규 등 4명의 시를 골라 묶은 필사본 시집 《다산시령(茶山詩零)》이 들어있지요.

“정초부(鄭樵夫)”를 한자 그대로 풀어보면 “정이라는 성씨를 가진 나무꾼”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안 교수는 여춘영(呂春永. 1734∼1812)의 문집 《헌적집(軒適集)》을 통해 여춘영의 노비였음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초부유고》을 통해 이름이 “이재(彛載)”임도 알 수 있지요. 그는 비록 신분이 노비였지만 여춘영의 아버지는 그가 가진 특별한 재능을 알아보고 아들의 글공부에 함께 하도록 배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헌적집》에는 1789년 정초부가 죽자 여춘영이 그를 추억하며 지은 만시(輓詩,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시) 12수가 담겨있습니다. 그 시 가운데는 여춘영이 "어릴 때는 스승, 어른이 되어서는 벗으로 지내며, 시에서는 오로지 내 초부뿐이었지(少師而壯友, 於詩惟我樵)"라고 정초부를 추억하는 내용도 있지요. 그뿐만 아니라 그의 죽음을 애도한 제문까지 실려 있습니다. 노비 정초부와 신분의 벽을 뛰어 넘어 깊은 교우 관계에 있었던 주인 여춘영은 정초부의 시를 사대부 사회에 널리 소개하며 그를 세상에 알렸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노비와 주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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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박이말 시조 267 >

달팽이



보고만 있어도 부럽기만 하느나

집 업어 기어가니 보람찬 삶이겠지

네 있어 얘들 즐겁고 하늘이 사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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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얘들 :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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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본 한국문인협회 회장 김리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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