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얼레빗) 3309. 고운 무덤서 출토된 옷들, 복식사에 매우 중요

튼씩이 2016. 6. 14. 09:01

날마다 쓰는 한국문화 편지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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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4349(2016). 6. 14.



광주시립민속박물관에는 중요민속문화재 제239호 “고운묘 출토유물(高雲墓 出土遺物)”이 있습니다. 이 유물들은 1986년 9월 문중에서 무덤을 옮기다가 발견되었는데 조선 중기 호남사림의 대표적 인물이었던 고운(高雲)의 무덤에서 출토된 옷과 유물들입니다. 고운(1479∼1530)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인 고경명의 할아버지로 조선 중종 기묘사화 때 화를 입어 벼슬을 잃고 고향으로 내려 왔다가 중종 25년(1530)에 죽었습니다.

유물들 가운데 옷들을 보면 포(袍)의 일종으로 옷깃이 둥근형태의 옷인 단령 1점, 옷깃이 곧은 형태의 옷인 직령 2점, 웃옷에 치마가 연결된 형태의 옷인 철릭 6점, 직령과 비슷하나 소매가 짧은 형태의 옷인 답호 3점과 바지류 5점, 모자 2점, 버선 2점, 이불 2점 등이 있으며, 그밖에 만장(輓章), 기(旗), 널, 자리, 칠성판도 있었지요.

옷들은 임진왜란 이전인 16세기 초의 것으로 주검에 입힌 것들과 관의 빈 공간을 채워주기 위해 넣은 것으로 보존상태가 매우 좋은 편입니다. 무명, 모시, 명주를 재료로 한 이 옷들은 고운이 생전에 입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고은묘 출토유물은 무덤 주인의 신분을 확실히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상태도 매우 양호하여 복식사와 시대고증에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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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악속풀이 267>

충청인의 정신이 담겨있는 내포제 시조창



지난주에는 포구락이라는 궁중무용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조선조 전기의 포구락은 16인의 무희가 8인, 또는 4인으로 무리를 이루어 춤을 추었는데, 음악총서인『악학궤범』에는 포구락이 그림과 함께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는 점을 이야기 하였다. 여기에 의하면 죽간자 2인의 구호를 시작으로 기녀(妓女) 16인이 좌우로 나뉘어 춤을 추다가 차례로 채구(彩毬)를 던져서 성공하면 상포를 받고, 실패하면 오른쪽 볼에 먹을 찍고 물러난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 많은 궁중정재 중에서도 유일하게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놀이형식의 전통성을 지니고 있는 재미있는 춤이란 이야기, 조선조 후기, 순조 때의 포구락도 전기와 대동소이한데, 다만 비교가 되는 것은 무희가 16명에서 12명으로 줄었다는 점, 반주악곡명이 달라진 점, 창사의 내용이나 횟수가 다르다는 점 등을 이야기 하였다.

또한 조선조 말엽부터 현재까지는 관악 영산회상의 악곡들을 삼현육각 편성으로 반주하고 있는데, 그 까닭은 이 곡이 모음곡 형식의 구성이고, 다양한 장단으로 구성되었으며, 음향이 큰 악기들이 편성이란 점, 이와 함께 느린 10박, 빠른 10박, 6박, 4박 등 다양한 빠르기의 구성이어서 무용음악에 적합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하였다. 결론적으로 포구락은 춤의 구성, 춤사위, 창사, 반주음악 등의 전승도 물론 가치가 크지만, 그 이전에 이 춤이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문화재적인 가치는 충분하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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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무용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도중, 잠시 내포제시조창 발표회와 함께 전국적인 시조강습회가 있어서 이를 먼저 소개하도록 한다.

해마다 6월이 되면 전국의 전문 시조꾼들과 애호가들이 부여를 찾는다. 이유는 내포제 시조강습회를 겸해서 보유자와 명인들의 발표회가 지속되어 오기 때문이다. 이번 행사는 6월 15(수)~18(토)일까지 계속된다.

충청인들에 의해 면면히 이어오는 내포제시조는 창법이나 말붙임, 표현법 등이 지역의 특징을 간직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유산이다. 이 행사를 주최 주관하고 있는 <내포제시조보존회>는 전국의 시조인들을 대상으로 내포제 시조창 확산을 위한 대대적인 강습회를 28년째 열어오고 있다.

또한 10년 전부터는 강습회를 시작하기 전, 내포제시조의 예능보유자인 김연소 명인의 발표회와 이규환, 김영숙, 안학준, 김종범 명인들의 시범창도 감상할 수 있다. 이러한 행사야말로 시조의 확산과 보급의 차원을 넘어 국악계, 우리문화 예술계 전반에 이바지하는 바가 매우 크다 아니할 수 없는 일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시조창은 빠르지 않은 박자와 장중한 창법으로 부르는 조선조 영조 무렵부터 전해오는 옛날의 노래이다. 5박과 8박의 장단구조와 3음 중심의 간단한 선율형은 세련 정제된 형식미와 유장미, 표현의 절제미, 창법의 장중미를 느끼게 되는 노래로 예부터 충신이나 애국지사, 지식인, 선비들이 즐겨 불러온 노래였다. 시조창의 멋을 알고 있는 그들은 이 노래를 통해 세상의 영욕(榮辱)은 한낱 뜬구름에 불과한 것임을 스스로 깨닫고 서로를 인정하고 신뢰하게 만드는 노래로 다듬어 온 것이다.

조선조 후기를 지나면서 선비들의 애호를 받아온 시조창은 평시조에서 지름시조, 사설시조, 여창지름, 우조시조, 등 등, 형식이나 가락에 따라 여러 종류로 확대되어 왔다. 또한 말 붙임이나 창법, 특징적 표현법 등에 따라서 지방별로 구분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원형은 경제의 평시조라 하겠다.

서울 경기지방에서 불리고 있는 시조가 바로 경제(京制)시조이고, 각 지방의 시조는 향제(鄕制)이다. 향제는 충청도 지방의 내포제시조, 경상도 지방의 영제시조, 그리고 전라도 지방의 완제시조가 대표적이다. 시조 명창 정경태는 각 지역의 특징적 가락이나 창법을 살려 자신의 제(制)를 만들어 불렀는데, 이 시조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그의 아호를 딴 석암제로 지방 곳곳에서는 널리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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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현대사회에 이르러 격조 있는 노래들이 시류에 밀려 점점 외면당하기 시작하였고, 급기야는 일부 노인층에서만 그 명맥을 잇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에 놓이게 되었다. 처방을 서두르지 않으면 이러한 상황도 오래 지속될 수 없을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필자는 지난 3월 <충남문화재단>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지역의 주민이나 학생들이 중고제의 예술적 특징이나 가치를 공유하고 이를 통하여 자긍심을 고취시킬 수 있는 사업이 곧 재단이 할 우선적인 사업임을 전제하면서 내포제 시조의 중요성이나 확산 방안을 강조해서 공감을 얻은 바 있다.

충청지역의 시조창은 그만큼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 형태가 단순한 기교와 담백한 곡조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재확인 하고자 했던 것이다.

우리는 어려운 시대를 우리와 함께 한 귀한 유산들을 잃어버리고, 그 잃은 것을 모르고 있다가 혹은 뒤늦게 그 가치를 확인하고 나서 이를 다시 찾기 위해 얼마나 고민을 해 왔고, 또한 안간힘을 써 왔던가! 다행스럽게도 충청남도는 이러한 상황을 일찍이 간파하고 내포제시조를 지방문화재로 지정하여 그 보존과 계승을 다 하고 있으며 특히, 지역의 시조인들이 <충남통합시우회>를 조직하여 시조강습회와 공연, 전국경연대회, 보유자 발표회 등 등, 시조관련 행사를 추진해 오고 있어서 다른 지방에 본보기가 되고 있는 것이다.

고맙고 다행한 일이며 축하해 줄 일이 아닐 수 없다.

부디, 부여에서 울려 퍼지는 시조창의 기운이 전국으로 확산되기를 기대하며 김연소 명인의 발표회와 통합시우회가 주최하는 6월 내포제 시조강습회가 올해에도 성황을 이루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이러한 행사는 내년에도 후년에도 성황을 이루어서 부여, 충남지역, 아니 한국의 큰 축제로 자리매김 하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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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한 범 / 단국대 명예교수, 한국전통음악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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