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 그림은 말년에 더욱 능란해지고 신기해져 현재 심사정과 더불어 이름을 나란히 하며, 세상에서는 겸현(謙玄)이라고 일컬지만, 그 아담한 정취는 현재에 미치지 못한다고도 한다.” 이 말은 조선 후기의 문신 김조순이 겸재 그림을 평한 <제겸재화첨>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김조순은 우리가 익히 아는 겸재 정선이 현재 심사정에 미치지 못한다고 하는군요. 요즘 사람들은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는 웬만하면 알지만 현재(玄齋) 심사정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 조선의 으뜸 문인화가 심사정의 <딱따구리>, 한국미술사의 기념비적 명작으로 꼽힌다.
심사정(沈師正, 1707~1769)은 조선 후기 2백 년을 대표하는 화가로 사람들이 일컫는 3원3재(三園三齋,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 겸재 정선, 관아재 조영석, 현재 심사정)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힐 만큼 뛰어난 화가입니다. 현재는 중국 남종문인화를 완벽하게 소화하여 토착화한 화가로 관념적 화풍으로 그윽한 멋과 조선 그림이 세계로 나가게 했다고 미술사학자 유홍준은 말했습니다.
그러나 심사정은 할아버지 심익창이 영조 임금을 살해하려 한 무리의 배후라는 죄로 극형을 당한 뒤 몰락한 집안에서 일생을 보낸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림을 그려도 그림에 시 한 수 붙여주는 선비가 없었던 것이지요. 다만,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만이 심사정의 〈산수도(山水圖)〉, 《경구팔경첩(京口八景帖)》에 “그윽하되 깊고 고요한 맛이 있다.”라고 적었습니다. 심사정은 그렇게 어려운 환경에서도 붓끝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담아냅니다. 남들이 겪어보지 못했던 쓰라림과 고독의 감정을 넘어서서 조선 으뜸 문인화가가 된 것이지요.
▲ 심사정(沈師正) 그림, 〈산수도(山水圖)〉, 《경구팔경첩(京口八景帖)》 중, 비단에 엷은 색, 40.0×51.0㎝ / 왼쪽은 강세황이 쓴 글로 “그윽하되 깊고 고요한 맛이 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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