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계묘일(癸卯日)에 하늘땅에 고유제(告由祭)를 지내고 황제의 자리에 올라서 국호를, ‘대한(大韓)’이라고 정하였다. 이 해를 광무 원년으로 삼아 사직(社稷)을 태사 태직(太社太稷)으로 고쳐 쓰고 금보(金寶)와 금책문에 왕후(王后)를 황후로, 왕태자(王太子)를 황태자로, 왕태자비(王太子妃)를 황태자비(皇太子妃)로 쓰도록 명(命)하였다.”
위는 고종실록 34년(1897) 11월 22일(양력) 자의 기록입니다. 고종임금은 아관파천 이후 다시 궁궐로 돌아온 뒤 “대한제국”을 선포합니다. 그리곤 원구단에서 황제로 등극합니다. 이것은 그동안 중국을 사대했던 나라에서 이젠 당당한 그리고 독립적인 황제국가가 됨을 뜻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라의 뿌리인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을 “태사(太社)”와 “태직(太稷)”으로 바꿔 부릅니다. 태사와 태직이란 황제나라에서만 쓸 수 있는 것으로 대한제국의 당당함을 또 한 번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태사와 태직은 일제강점기 일제가 격을 낮추려고 다시 종묘와 사직으로 불렀고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만들어 훼손한 것처럼 사직단을 사직공원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문화재청은 그동안 서울시가 관리해오던 사직단을 문화재청으로 이관하여 《사직서전도(사직단국왕친향도병풍)》 같은 문헌을 참고하여 훼손되고 왜곡된 사직단의 제모습을 찾아 복원할 계획이지요. 이 참에 사직단의 제모습 찾기를 하면서 이름도 “태직(太稷)”으로 바로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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