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얼레빗 4464호) 내일은 입동(立冬), 겨울 채비에 발 동동 굴러

튼씩이 2020. 11. 6. 14:45

“쌀쌀한 바람이 때때로 불며 누른 잎새가 우수수하고 떨어지든 가을철도 거의 다 지내가고 새빨갓케 언 손으로 두 귀를 가리고 종종 거름을 칠 겨울도 몃날이 못되야 또다시 오게 되얏다. 따듯한 온돌 안에서 쪽각 유리를 무친 미닫이에 올골을 대이고 소리 업시 날리는 백설을 구경할 때가 머지 아니하야 요사이는 길가나 공동수도에 모히어 살림이야기를 하는 녀인네 사이에는 ‘우리 집에는 이때까지 솜 한 가지를 못 피어 놓았는데 이를 엇지해….’ 하며 오나가나 겨울준비에 분망하게 되었다.”

 

 

위는 <입동과 침채(沈菜)* 준비>라는 제목의 1922년 11월 6일 치 동아일보 기사 일부로 당시의 입동 무렵 분위기를 잘 묘사해 놓았습니다. 내일은 24절기의 열아홉째인 입동(立冬)으로 겨울에 드는 때입니다. 이때쯤이면 곧바로 닥쳐올 겨울 채비 때문에 아낙네들은 걱정 속에 일손이 바빠집니다. 그런데 입동 전후에 가장 큰 일은 역시 김장이지요. 지금은 배추를 비롯한 각종 푸성귀를 한해 내내 팔고 있고 김치 말고도 먹을거리가 풍요롭지만, 예전에 겨울 반찬은 김치가 전부이다시피 해 김장은 한해 살림의 아주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해마다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는 “서울김장문화제”가 열린다.

 

 

입동 무렵에는 김장 말고도 무말랭이ㆍ시래기 말리기, 곶감 만들기, 땔감으로 장작 패기, 문풍지 바르기 따위의 일들로 몹시 바빴습니다. 특히 감나무의 감을 딸 때는 날짐승을 위해 감 몇 개를 남겨놓을 줄 아는 여유도 잊지 않았습니다. 또 입을거리가 넉넉지 않았으므로 솜을 두둑이 깔아 누비옷을 만들고 솜을 틀어 두툼한 이불도 마련해야 했지요. 1946년 11월 8일 석간에는 “입동! 닥처오는 추위에 가난이 걱정이다.”라는 기사가 나올 정도로 이 무렵에 가난한 집의 주부는 큰 걱정이었습니다.

 

 

* 침채(沈菜) : 옛 요리책인 《주방문(酒方文)》에는 김치를 “침채(沈菜)”라고 썼며 한글 표기는 ‘지히’라고 썼다. 김치(딤채)는 침채에서 생겨난 낱말로 푸성귀를 소금물에 절인다는 뜻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