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얼레빗 4496호) 매국노 이완용을 칼로 찌른 이재명 열사

튼씩이 2020. 12. 22. 07:34

1909년 12월 22일 서울 명동성당 앞, 이재명 열사는 벨기에 황제 레오폴트 2세의 추도식에 참석하고 나와 인력거를 타고 가는 매국노 이완용의 어깨를 칼로 찔렀습니다. 그 뒤 도망가는 이완용의 허리 등을 다시 찌릅니다. 그리고 이완용을 완전히 처단하려는 순간 이재명은 호위순사에 의해 넓적다리를 찔려 중상을 입고 현장에서 체포됩니다.

 

 

 

▲ 이재명 열사, 독립기념관 제공

 

 

 

재판정에서 이재명 열사는 일본의 핍박에도 자신은 나라에 바친 몸이므로 변론할 것이 없으나, 연루된 동지들은 죄가 없다는 주장을 의연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경성재판소는 김정익 등 동지들에게 15년에서 5년형을 선고하고, 이재명 열사에게는 사형을 선고했지요. 그러나 열사는 “너희 법이 불공평하여 나의 생명은 빼앗지만, 나의 충혼(忠魂)은 빼앗지 못할 것이다. 지금 나를 교수형에 처한다면 나는 죽어 수십만 명의 이재명으로 환생하여 너희 일본을 망하게 할 것이다”라고 일본인 재판장에게 경고하였습니다.

 

 

이재명 열사는 9월 15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으며, 1910년 9월 30일 사형 집행으로 24살 나이에 순국하였습니다. 이재명 열사는 원래 미국에서 안창호 선생이 창립한 항일단체인 공립협회에서 활동하다가 귀국하여 1909년 1월 평안도를 방문하는 이등박문을 처단할 계획도 세우기도 했고, 이후 계획을 변경, 이완용을 비롯한 을사오적을 처단하기로 하여 결행한 것입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2년 이재명 열사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