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양력으로 2020년 경자년(庚子年)의 마지막 날 섣달그믐 곧 ‘설밑’입니다. 전통적인 섣달그믐이야 음력으로 따져야 하겠지만, 일단 섣달그믐을 달리 이르는 말로 ‘눈썹세는날’이란 별명도 있습니다. 조선후기 권용정(權用正)이 쓴 《한양세시기(漢陽歲時記)》에 보면 “어린아이들에게 겁주기를 ‘섣달그믐날 밤에 잠을 자지 말아야 한다. 잠을 자면 눈썹이 희어진다.’라고 했는데, 아이들 가운데는 이 말을 그대로 믿어서 새벽이 될 때까지 잠을 자지 않는 일도 있다.”라고 했지요. 또 19세기 중엽 김형수(金逈洙)가 쓴 《소당풍속시(嘯堂風俗詩)》에도 “나이 더한 늙은이는 술로써 위안 삼고 눈썹 셀까? 어린아이 밤새도록 잠 못 자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섣달그믐날은 “눈썹세는날”이 된 것입니다.
▲ 오늘은 섣달그믐, ‘눈썹세는날’이다. (그림 이무성 작가)
그런데 예전 우리 겨레는 음력 섣달그믐날 밤에는 방이나 마루, 부엌, 다락, 뒷간, 외양간에 불을 밝게 밝히고 잠을 자지 않았습니다. 그 유래는 도교(道敎)의 경신수세(庚申守歲)에서 왔는데 도교에서는 60일에 한 번씩 돌아오는 경신일이 되면 사람 몸에 기생하던 삼시충(三尸蟲)이 사람이 잠든 사이에 몸을 빠져나와서 옥황상제에게 가 지난 60일 동안의 잘못을 고해바쳐 수명을 단축한다고 했지요. 그래서 밤에 잠을 자지 않고 깨어있으면 삼시충이 몸에서 빠져나가지 못함으로써 옥황상제께 자신의 죄가 알려지지 않아 오래 살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또 섣달그믐의 세시풍속에는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담치기”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풍물을 치고 다니면 어른들이 쌀이나 보리 같은 곡식을 부대에 담아줍니다. 그렇게 걷은 곡식은 노인들만 있거나 환자가 있는 것은 물론 가난하여 명절이 돼도 떡을 해먹을 수 없는 집을 골라 담 너머로 몰래 던져주었습니다. 이 ‘담치기’는 이웃에게 좋은 일을 많이 해야 그해 액운이 끼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입춘의 “적선공덕행”이나 밭뙈기 하나도 없는 가난한 집에서 십시일반으로 곡식을 내어 마을 어른들을 위한 잔치를 했던 입동의 “치계미”와 함께 우리 겨레에게 이어져 오던 아름다운 풍속이었지요. 올 한해는 돌림병 코로나19 탓으로 사람들은 유난히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런 때의 설밑에 ‘담치기’ 정신으로 서로 어려움을 나눠 가지면 좋을 일입니다.
▲ 섣달그믐의 세시풍속 ‘담치기’ (그림 이무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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