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조선 중기에 나온 것으로 펴낸 사람을 알 수 없는 보물 제551호 《시용향악보(時用鄕樂譜)》를 아십니까? 《시용향악보》는 향악의 악보집인데 향악(鄕樂)이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사용하던 궁중음악으로, 삼국시대에 들어온 당나라 음악인 당악(唐樂)과 구별되는 한국고유의 음악을 말합니다. 이 책에는 악장을 비롯한 민요, 창작가사 따위 악보가 실려 있는데, 그 가운데 악보가 있는 가사(歌詞)는 모두 26편이 실려 있지요.
그 26편의 가사 가운데 ‘상저가’, ‘유구곡’을 비롯한 16편은 다른 악보집에 전하지 않아 제목조차 알려지지 않은 귀한 고려가요입니다. 이 책에는 한문으로만 된 ‘생가요량’과 함께 한글로 된 ‘나례가’, ‘상저가’ 따위가 있고, ‘구천‘, ‘별대왕’처럼 가사가 아닌 ‘리로노런나 로리라 리로런나’와 같은 여음(餘音)만으로 표기된 것도 있습니다. 또 조선의 건국과 임금의 만수무강을 비는 노래, 신하들의 언로(言路)를 열기 위한 풍유(諷諭) 등 다양한 가요도 실려 있지요.
이 악보에 실려 있는 노래의 성격은 민요부터 창작가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여 조선 초기 궁중에서 불리어지던 가요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고 하는데, 특히 무가 계통의 노래가 많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고려의 궁중악들로서 조선에 전해지고, 다시 조선 초기 정리 과정을 거쳐 남겨진 작품들입니다. 가사의 원형이 잘 보전되어 있는 이 책은 국문학과 민속학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지요.
|
|
|
|
| |
|
|
|
|
|
|
-------------------------------------------------------- < 국악속풀이 274> |
|
|
|
| |
|
|
|
|
|
|
연변에서 듣게 된 한국의 전통민요 |
|
지난주 속풀이에서는 연변예술대학에서 민족성악을 가르치고 있는 전화자 교수를 만나게 되어 그로부터 연변 동포들의 음악활동을 전해 들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합주의 악기형태, 북방의 악기 거문고의 활용여부, 함경도나 평안도의 소리, 판소리, 춤 등에 관해 물어보는 나에게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임을 강조해서 뜻을 함께 한 16명과 함께 1991년 여름, <길림예술학원 연변분원(吉林藝術學院 延邊分院)>을 방문했다는 이야기, 김삼진 원장을 비롯한 원로 교수들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또 제18회 교류음악회를 위하여 예술학원에서는 기악합주를 비롯하여 남도민요, 대피리 독주, <압록강2천> 등의 신민요, 해금 2중주, 경기민요, 목관4중주, 서도민요, 옥류금 독주, 박춘희의 신민요, 예술학원 교학실천 민족악단의 기악합주 <옹헤야> 등을 준비했다는 이야기, 이러한 연주곡을 감상하면서 다시 한 번 우리의 뿌리가 하나라는 점을 확인하였으며 우리의 감정과 정신이 녹아있는 민족음악을 함께 지켜가야 한다는 의지를 더욱 굳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 |
|
|
|
| |
|
|
|
|
|
|
. |
|
예술학원이 발표한 종목 하나하나가 모두 각각의 특색을 지닌 아름답고 예술성이 넘쳐나는 종목들이었지만, 특히 인상에 남는 종목은 신광호 교수가 부른 <압록강2천>과 <여랑수레 령 넘어가네> 등의 신민요와 박춘희 교수가 부른 <비단짜는 처녀>와 <일하기도 좋고 살기좋은 나라>였다. 우선 시원하면서도 힘이 실려 있는 독특한 창법과 음색이 좌중을 압도했으며, 강약을 살린 박력 있는 선율은 듣는 이의 숨을 멈추게 할 정도였다. 이에 못지않게 많은 박수를 받은 노래가 김순희 교수가 부른 <태평가>와 리홍관 교수가 부른 서도민요였다.
김순희는 경기민요 태평가를 흥겹게 불러서 객석을 흥겹게 만든 다음, 유사한 창법으로 <해란강 전설>을 불러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또한 리홍관은 <긴난봉가>와 <잦은난봉가>, 그리고 <사설난봉가>를 불러 많은 박수를 받았다. 경기민요나 서도민요를 부를 때에는 한국에서 참여한 많은 회원들이 열심히 따라 불러서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었던 것이다.
연변땅에서 경기민요나 서도민요를 듣게 되다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이러한 변화의 시작이 바로 1990년대 초 전화자 교수가 한국에 나와 전통적인 창법에 의한 민요를 공부한 다음, 연변에 돌아가 대학의 제자들을 지도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동포들이 모여 사는 중국땅, 연변지역에서 우리의 말과 민요를 지켜나가야 한다는 그의 애국적인 철학이 이제 서서히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듯 보였다.
이번 무대에서 북쪽의 주체발성법이 아닌 남한의 진성이나 가성으로 경기민요와 서도민요를 불러 분위기를 절정에 오르게 한 김순희 교수나 리홍관 교수는 어린 시절부터 전화자 교수에게 민족성악을 배운 소리꾼들이었다. 그들은 경서도 소리를 더욱 더 넓고 깊게 공부하기 위해 이곳 한국으로 유학을 했던 용기 있는 젊은이들이다.
김순희는 당시 단국대 석사과정에 있으면서 묵계월 명창에게 여러 해 경기소리를 익힌 다음 돌아가 제자들을 양성하기 시작하였고, 최근까지 한국에서 서도소리를 공부한 리홍관은 중앙대에서 석사, 단국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연변대학으로 돌아가 후진들을 지도하고 있는 젊은 교수이다. 이들이 있어서 이번의 교류음악회가 북한식 노래 일변도가 아닌, 서서히 남한의 정서를 대변하고 있는 음악회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 것이다.
| |
|
|
|
| |
|
|
|
|
|
|
. |
|
기악으로는 이동식이 지휘하는 앙상불도 수준급이었거니와 대피리 독주나, 목관4중주, 해금2중주도 새롭기만 했다. 특히 리수련의 옥류금 독주 <도라지>는 관중 대부분이 노래 선율도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이를 다양한 리듬과 빠르기, 여러 가지 새로운 주법으로 변주시켜서 절찬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악기를 연주하는 자세, 태도야말로 음악 속에 깊이 몰입된 연주자의 모습을 여지없이 보여 주었다고 하겠다. 이제 옥류금은 북한과 연변에만 존재하는 악기가 아니다. 연변 출신 김계옥 교수를 통해 한국에서도 종종 연주되고 있는 보편적인 악기로 인식되고 있을 정도이다.
연변예술대학과 연길시 전통민요협회가 공동으로 준비한 공연에 이어서 한국 쪽에서는 서한범의 해설로 박문규의 가곡창 <편락>이 올려졌다. 다음으로는 이기옥, 김인숙 2인의 송서 율창 중에서 <등왕각서>, 추점순 외 4인의 경기민요, 대전시 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 고향임과 그의 제자들인 김갑보와 김창연이 판소리 <흥보가> 중 박타는 대목이 이어졌으며, 정효정의 12현 가야금독주 <영목>, 그리고 남도의 대표적인 민요, <성주풀이>, <남원산성>, <진도아리랑>을 고향임, 양희승, 김혜연, 김병혜, 송효진, 김보배 등이 합창으로 불렀다.
이어서 유춘랑 외 2인이 <난봉가>류의 서도민요를 들려주었고, 이어서 나온 박준영은 배뱅이굿으로 공연장을 뒤집어 놓았다. 그리고 마지막 순서는 김병혜 교수가 이끄는 서편제 소리사랑 팀에서 심청가 중 범피중류 대목을 창극조로 꾸며 선을 보였다. 소리도 소리이려니와 10여명이 멋스럽게 호흡을 맞춘 발림은 소리보다 더 청중의 눈을 만족시켜 주었다. 객석의 열화와 같은 재청에 못 이겨 그들은 즉석에서 <신뱃노래>로 화답해 객석과 하나가 되는 시간을 가졌다.
공연문화도 연변과 우리는 차이가 있다. 우리는 공연도중, 추임새를 넣어서 창자나 연주자의 흥을 최대한 돕지만, 연변은 아직 이러한 분위기에 익숙지 않은 듯하다. 다른 사람이 무대 위에서 열연을 하는데, 어찌 조용히 감상하지 않고 입을 여는가? 그래서 그들은 아무리 흥이 나도 박수를 치지 않고 조용히 감상하는 것을 예의라고 여기는 것이다. 생각의 차이이겠지만, 정가와 같은 선비의 문화에서는 연주 중간에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 기본 감상법이 될 것이고, 대중의 음악은 서로 하나가 되기 위해 박수도 치고 추임새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대 위에 어떠한 음악이 연출되고 있는냐에 따라 적절한 감상태도가 필요할 것이다. 마지막 순서 신뱃놀이에서는 객석에 앉아 있던 많은 사람들이 무대 앞으로 나와 춤도 추고, 목소리를 높여 마치 축제의 한 장면을 연출한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 |
|
|
|
| |
|
|
|
|
|
|
. |
|
서 한 범 / 단국대 명예교수, 한국전통음악학회장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