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봅시오. 이것 얼마에 잡으시겟슴닛가?』 동경만 가터도 최소로 이원은 줄 터인데 아마 서울이닛간 일원쯤은 주겟지 하고 경성 안에서도 덩덩그러케 붉은 벽돌 새집을 지어놋고 잇는 화동 어느 전당포를 드러서서 그러케 물어 보앗겟다. 그 안에 게신 사무원 한 분 아침 변또를 자시다가 끼우-시 내다보고, 『그런 건 잘 안 잡슴니다. 잡어도 얼마 드리지 안흐나 주인이 안 게시니 자세히 모르겟슴니다. 』”
위 글은 잡지 <별건곤> 제5호(1927년 03월 01일 발행)에 있는 “貧民銀行 典當鋪 이약이, 典當物로 본 北村의 生活相, 손님은 누구, 물건은 무엇?”이란 제목의 이야기로 기자가 전당포를 취재하는 내용입니다. “전당포(典當鋪)”란 물건을 잡고 돈을 빌려 주어 이익을 취하는 곳으로 일종의 사금융업이지요. 전당이라는 말은 ≪고려사≫ 식화편 차대조(借貸條)에서 처음으로 볼 수 있습니다.
처음은 인질에서 발달되었는데 사람을 빚의 담보로 한 것은 찢어지게 가난하여 살길이 막막할 때 아내나 자식을 저당잡혔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례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신매매와 더불어 전근대사회에서 공통적으로 벌어졌던 현상이지요. 집에 먹을 것이 떨어졌거나 아니면 누가 갑자기 몸이 아프면 도리 없이 아끼던 물건을 들고 전당포로 들고 달려갔던 서민들이었습니다. 이제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이 되어 전당포가 필요 없기를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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