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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레빗) 3367. 조선시대에도 수표와 어음이 있었다

튼씩이 2016. 8. 19. 16:12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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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4349(2016). 8. 19.



수표는 현금을 대신해서 큰돈을 주고받을 때 씁니다. 요즘이야 수표 대신 계좌이체를 써서 수표의 쓰임새가 많이 줄었지만 얼마 전만 해도 경제 활동에 중요한 수단이었지요. 그런데 조선시대에도 수표를 썼던 사실을 아시나요? 물론 현대에 우리가 쓰고 있는 수표와는 다르지만, 조선사회에서도 수표를 썼음이 경기도 남양주시 실학박물관에서 오는 9월 18일까지 열리고 있는 “경기 청백리 특별전”에서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수표를 가진 사람이 발행 은행에 수표를 제시하면 해당 금액을 지급받는 것이지요. 그러나 전시회에 나온 조선시대에 썼던 수표는 전당문서와 같은 것입니다. ‘전당’이란 물건을 맡기고 빌린 돈을 기한 안에 갚지 못하면 맡긴 물건을 마음대로 처분해도 좋다는 조건 아래 돈을 빌리는 것이지요. 이 수표는 급한 용도로 벼 20가마를 빌리는 대신 논 18마지기를 전당으로 잡힌다는 내용입니다.

물론 조선시대에도 어음을 썼으며 요즘의 약속어음과 같다고 할 수 있겠지요. 어음은 ‘어험’, ‘음표’, ‘표권’이라고도 불렀는데, 발행한 사람, 받는 사람, 수령금액, 지급기일 따위를 기록했습니다. 전시회에 나온 수표는 이것을 가진 사람이 어음을 보여주면 즉시 600냥을 내주라는 내용입니다. 박물관 전시회에 자주 들려보면 이런 재미난 것들을 많이 볼 수가 있습니다.

옛 얼레빗 (2012-08-16)



2362. 서민의 한숨이 서린 전당포 그때를 아십니까(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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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봅시오. 이것 얼마에 잡으시겟슴닛가?』 동경만 가터도 최소로 이원은 줄 터인데 아마 서울이닛간 일원쯤은 주겟지 하고 경성 안에서도 덩덩그러케 붉은 벽돌 새집을 지어놋고 잇는 화동 어느 전당포를 드러서서 그러케 물어 보앗겟다. 그 안에 게신 사무원 한 분 아침 변또를 자시다가 끼우-시 내다보고, 『그런 건 잘 안 잡슴니다. 잡어도 얼마 드리지 안흐나 주인이 안 게시니 자세히 모르겟슴니다. 』”

위 글은 잡지 <별건곤> 제5호(1927년 03월 01일 발행)에 있는 “貧民銀行 典當鋪 이약이, 典當物로 본 北村의 生活相, 손님은 누구, 물건은 무엇?”이란 제목의 이야기로 기자가 전당포를 취재하는 내용입니다. “전당포(典當鋪)”란 물건을 잡고 돈을 빌려 주어 이익을 취하는 곳으로 일종의 사금융업이지요. 전당이라는 말은 ≪고려사≫ 식화편 차대조(借貸條)에서 처음으로 볼 수 있습니다.

처음은 인질에서 발달되었는데 사람을 빚의 담보로 한 것은 찢어지게 가난하여 살길이 막막할 때 아내나 자식을 저당잡혔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례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신매매와 더불어 전근대사회에서 공통적으로 벌어졌던 현상이지요. 집에 먹을 것이 떨어졌거나 아니면 누가 갑자기 몸이 아프면 도리 없이 아끼던 물건을 들고 전당포로 들고 달려갔던 서민들이었습니다. 이제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이 되어 전당포가 필요 없기를 빌어봅니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소장 김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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