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 사대부 화가 낙파(駱坡) 이경윤(李慶胤)의 <월하탄금도(月下彈琴圖)>를 보면 한 남자가 달을 보며 무심하게 거문고를 탑니다. 그런데 이 거문고는 줄이 없는 무현금(無絃琴)입니다. 중국의 도연명은 음악을 모르면서도 무현금 하나를 마련해 두고 항상 어루만지며 ‘거문고의 흥취만 알면 되지 어찌 줄을 퉁겨 소리를 내야 하랴’라고 했다지요. 옛 선비들은 마음을 닦기 위해서 거문고를 연주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줄이 없어도 괜찮았던가 봅니다.
아! 이 오동은
나를 저버리지 않았으니
서로 기다린 게 아니라면
누구를 위해 나왔으리오.
현재 전해지는 거문고 가운데 가장 외래되었다는 ‘탁영거문고’에 새겨진 시입니다. 탁영거문고는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이 27세였던 성종 21년(1498년)에 34세의 나이로 능지처참을 당했지만 영원히 탁영거문고에 살아 있습니다. 1644년에 만들어진 스트라디바리우스(Stradivarius)를 서양 현악기의 걸작이라고 하는데, 우리에게는 그보다 무려 150년이나 앞선 탁영거문고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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