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쟁이처럼 혀를 내밀고 있는 천록
경복궁에서 광화문을 지나 근정전으로 들어가는 흥례문을 들어서면 작은 개울, 곧 금천禁川이 나옵니다. 그러면 영제교永濟橋를 건너야 하는데, 이 영제교 좌우로 얼핏 보면 호랑이 같기도 하고 해태 같기도 한 동물의 석상이 두 마리씩 마주보며 엎드려 있습니다. 이덕무李德懋의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 “비늘과 갈기가 꿈틀거리는 듯이 완연하게 잘 조각되어 있다”라고 묘사된 이 석수는 무엇일까요?
이 짐승들은 혹시라도 물길을 타고 들어올지 모르는 사악한 것들을 물리쳐 궁궐과 임금을 지키는 임무를 다하고 있습니다. 매섭게 바닥을 노려보고 있는 듯하지만 얼굴에는 장난기가 가득합니다. 용의 머리, 말의 몸, 기린 다리, 사자를 닮은 회백색 털의 이 동물을 유본예柳本藝의 『한경지략漢京識略』에서는 ‘천록(天祿)’이라 말하고 있지요.
그런데 천록은 물론 해태와 근정전 지붕 위 잡상 따위는 원래 중국에서 들어온 것이지만, 중국 황실의 거대하고 위압적인 석상과 달리 우리나라의 석상은 해학적이고 친근한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영제교 북서쪽에 있는 천록은 개구쟁이처럼 혀를 쑥 내민 모양으로 조각되어 웃음이 납니다. 엄숙한 궁궐에 이 귀여운 천록을 보초로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우리 겨레의 삶 속에는 해학이 살아 있었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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