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초의 방명록 ‘세함’을 아십니까?
각사의 서리배와 각영의 장교와 군졸들은 종이에 이름을 적어 관원과 선생의 집에 들인다. 문 안에는 옻칠한 소반을 놓고 이를 받아두는데, 이를 세함(歲銜)이라 하며, 지방의 아문에서도 이러하였다.
홍석모(洪錫謨)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나오는 기록입니다. 또 한양(漢陽)의 세시기를 쓴 책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 따르면, 설날부터 정월 초사흘 날까지는 승정원과 모든 관청이 쉬며, 시전(市廛) 곧 시장도 문을 닫고 감옥도 비웠다고 합니다. 서울 도성 안의 모든 남녀가 울긋불긋한 옷차림으로 왕래하느라 떠들썩했다고 하지요. 한편 이 사흘 동안 정승, 판서 같은 고위관원의 집에서는 세함만 받아들이되 이를 문 안으로 들이지 않고 사흘 동안 그대로 모아 두었다고 합니다.
‘세함(歲銜)’은 지금의 방명록이나 명함과 비슷합니다. 흰 종이로 만든 책과 붓, 벼루만 책상 위에 놓아두면 하례객이 와서 이름을 적었습니다. 설이 되면 일가친척을 찾아다니면서 세배를 하기 때문에 집을 비우는데, 그 사이에 다른 세배객이 찾아오면 허탕을 칠 수 있지요. 이때 세함을 놓고 가면 누가 다녀갔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요즘 쓰는 명함과 달리 정초에만 사용되므로 세함이라 부르지요. 이때 방문객이 세함을 놓고 갈 뿐 마중하고 배웅하는 일이 없는데, 이는 정초에 이루어지는 각종 청탁을 배제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 먼 곳에 세배를 가야 하는 사람들이나 벼슬이 높아 궁중의 하례식에 참석하는 경우 만날 수 없는 사정을 해결하기 위한 것입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참 좋은 풍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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