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자식을 죽여서 자기 자식을 살릴 수 없다
듣자 하니 젖을 먹일 여종 학덕이가 태어난 지 서너 달 된 자기 아이를 버려두고 서울로 올라가야 한다고 하더구나. 이는 학덕의 아이를 죽이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근사록(近思錄)』에서는 이러한 일을 두고 말하기를 ‘남의 자식 죽여서 자기 자식 살리는 것은 매우 옳지 못하다’라고 했다. 지금 네가 하는 일이 이와 같으니, 어쩌면 좋으냐, 서울 집에도 젖을 먹일 만한 여종이 있을 것이니…….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년)이 손자 이안도에게 보낸 편지 일부입니다. 이안도의 아들, 곧 이황의 증손자는 어미의 젖을 먹을 수 없었지요. 그래서 이안도는 대신 젖을 먹여 키워줄 여종 학덕을 보내달라고 하지만, 이황은 해산한 지 얼마 안 된 여종 학덕에게 자신의 자식을 내버려두고 가게하는 것은 여종의 자식을 죽이는 것이라며 반대합니다.
퇴계 이황에 관한 일화로 대장장이 배순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황이 소수서원(紹修書院)에서 글을 가르칠 때, 근처에 사는 대장장이 배순이 뜰아래에 와서 듣고는 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이황은 배순이 제자들과 함께 배우게 했습니다. 이황이 풍기군수 임기를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가자 배순이 그의 동상을 세우고 아침저녁으로 배알하며 글공부를 이어갔습니다. 그로부터 22년 뒤 이황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복을 입고 날마다 동상 앞에서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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