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이 내린 계주서와 최치운
조선시대 화원 중에는 술에 취해야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사람이 많습니다. 술에 취해 눈밭에서 얼어 죽었다는 최북, 스스로 호를 ‘술 취한 늙은이’라 지은 취옹(醉翁) 김명국, 술에 취해야 그림을 그리던 오원 장승업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세종 때 이조참판을 지낸 조은(釣隱) 최치운(崔致雲)은 얼마나 술을 좋아했던지 세종이 ‘계주서(戒酒書)’를 내려 절제할 것을 명했을 정도입니다. 그는 계주서 글을 벽에 걸어두고 나가고 들 때에는 꼭 이것을 바라보고 조심했지요.
실학자 하백원과 도공 우명옥은 과음을 경계하기 위해 ‘계영배(戒盈杯)’라는 술잔을 만들었습니다. 이 계영배는 전체의 70% 이상 술을 채우면 술이 모두 새어 나가게 만든 특이한 술잔입니다. 후에 이 술잔을 조선시대의 거상 임상옥이 소유하게 되었는데, 그는 계영배를 늘 옆에 두고 끝없이 솟구치는 과욕을 다스리면서 큰 재산을 모았다고 합니다.
한편 최치운은 1439년 공조참판으로 계품사(啟稟使)가 되어 명나라에 가서 두만강 북쪽에 살던 야인(野人)들이 양민으로 경성 지역에 영주할 수 있도록 요청, 이를 관철시켰습니다. 이 공으로 밭 300결(結)과 노비 30구가 상으로 내려졌으나 노비는 굳이 사양하고 받지 않았지요. 그는 곧 예문관 제학이 되고, 그 뒤 여러 차례 사신이 되어 명나라를 다녀와서 외교적인 공을 세웁니다. 또 그는 “나라의 돈이 모두 백성에게서 나오는 것인데, 근년에 물난리와 가뭄이 겹쳐 굶는 사람이 많습니다”라며 가난한 백성을 구휼할 것을 상소하기도 한 사람입니다. 세종이 계주서를 내려서 그를 총애한 까닭을 알 만하지 않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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