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타는 것이 이리 즐거울 줄이야 – 양팽손, 「우음」
소 타는 것이 이리 즐거울 줄은 몰랐는데 不識騎牛好
나 다닐 말이 없는 까닭에 이제야 알았네 今因無馬知
해거름 저녁 무렵 풀 향기 가득한 들길 夕陽芳草路
나른한 봄날 저무는 해도 함께 느릿느릿 春日共遲遲
조선 중기의 문신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이 지은 「우음(偶吟, 그냥 한번 읊어보다)」이라는 한시입니다.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한 뒤 유유자적한 모습을 묘사한 전원시지요. 저 멀리 마을에서는 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땅거미를 타고 풀 향기가 솔솔 올라오는 들길을 소를 타고 가로지르는 모습은 마치 한 폭의 신선도 같은 느낌을 줍니다.
양팽손은 조광조(趙光祖) 등과 함께 1510년 생원시에 합격했습니다. 1519년 교리(校理) 자리에 있을 때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났는데, 그는 조광조를 위하여 연명(連名) 상소를 올렸다가 삭탈관직되어 고향인 능주로 내려왔지요. 조광조 역시 능주로 유배를 오자 그와 더불어 책을 읽었고, 조광조가 죽자 시신을 수습하기도 했습니다.
양팽손은 글씨를 잘 썼고 문장(文章)과 서화(書畫)에 뛰어났으며 윤두서, 허련(許鍊) 등과 함께 호남의 대표적인 문인화가로 꼽힙니다. 조광조는 일찍이 그를 두고 “학포와 얘기하면 마치 지초나 난초의 향기가 풍기는 것 같다. 비 개인 뒤의 가을 하늘이요, 얕은 구름이 걷힌 뒤의 밝은 달이라. 세속의 욕망이 깨긋하게 없어져 버린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어지러운 사화(士禍) 속에서 자신의 입장과 철학을 지키다가 난초의 청아한 모습처럼 살다 간 양팽손. 그의 시 「우음」을 다시 음미하면서, 저녁 무렵 소를 타고 풀 내음을 맡을 줄 아는 여유를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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