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풀 집에 밝은 달 맑은 바람이 벗이어라 – 길재, 「한거」
시냇가 띠풀 집에 한가히 지내노라니 臨溪茅屋獨閑居
달은 밝고 바람은 맑아 흥취가 가득하네 月白風淸興有餘
손님이 오지 않으니 산새가 찾아와 지저귀는데 外客不來山鳥語
대나무 밭에 평상을 옮겨놓고 누어서 책을 보네 移床竹塢臥看書
고려 말 충신인 야은(冶隱) 길재(吉再)의 한시 「한거(閒居, 한가히 지내다)」입니다. 그는 새 왕조인 조선에 벼슬하지 않고 금오산(金烏山)에 은둔하여 후학 양성에만 몰두했지요. 고려 조정에서 벼슬을 했던 그는 조선 왕조에서 부귀공명을 누리는 것이 욕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길재는 시냇가에 띠풀로 이은 집을 짓고 조용히 삽니다. 이 집에는 손님이 찾아오지 않지만 밝은 달과 맑은 바람이 벗이 되지요. 그뿐만 아니라 산새까지 곁을 지키니 이보다 더한 즐거움은 없습니다. 길재는 한술 더 떠서 평상을 대나무 그늘로 옮겨놓고 달빛에 책을 봅니다. 벼슬을 탐하는 속세의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삶에서 은자의 낙을 한껏 누린 것입니다.
길재는 영달에 뜻을 두지 않고 성리학 연구에만 몰두했기에 그를 본받고 가르침을 얻으려는 학자가 줄을 이었습니다. 김종직(金宗直),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 조광조 같은 대학자가 그의 학맥을 이었지요. 충청남도 금산에는 조선 숙종 4년(1678년)에 길재의 절개를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청풍서원(淸風書院)이 있습니다. 지금도 벼슬 하나 얻으려고 쓸개도 간도 버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야은 길재의 삶은 우리에게 큰 가르침을 던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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