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아름다운 우리문화 산책(김영조)

마음을 비우고 솔바람 소리 들을까? - 홍세태, 「우음」

튼씩이 2022. 1. 10. 08:03

마음을 비우고 솔바람 소리 들을까? - 홍세태, 「우음」

 

 

시비를 겪고 나서 몸은 지쳤고               是非閱來身倦

영욕을 버린 뒤라 마음은 비었다            榮辱遣後心空

사람 없는 맑은 밤 문 닫고 누우니          閉戶無人淸夜

들려오는 저 시냇가 솔바람 소리            臥聽溪上松風

 

 

조선 후기 시인 홍세태(洪世泰)의 한시 우음(偶吟, 그냥 한번 읊어보다)입니다. 홍세태는 5세에 책을 읽을 줄 알았고, 78세에는 이미 글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무관이었지만 어머니가 종이었기 때문에 그도 종모법(從母法)에 따라 종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똑똑한 홍세태를 본 사람들이 돈을 모아 속량(贖良)시켜 주었다고 합니다.

 

홍세태는 속량만 되었지 중인 신분이었기 때문에 과거를 보고 벼슬에 나갈 수가 없었지요. 어릴 때 이미 자신의 처지를 알았던 홍세태는 시로 이름을 떨치려 마음먹었습니다. 그는 김창협, 김창흡, 이규명 같은 유명한 문인 사대부와 절친하게 지내는 것은 물론 많은 중인과 교류했지요. 홍세태는 역과에 급제한 뒤에 통신사를 따라 일본에 가서 크게 이름을 떨쳤습니다. 일본인들은 그의 시와 글씨를 얻기 위해 구름처럼 몰려다녔고, 그의 초상화를 가보처럼 여기는 사람도 있었다고 하지요.

 

홍세태가 지은 염곡칠가(鹽谷七歌)에는 당시 백성들의 비천한 삶을 가슴 아파하는 내용도 보입니다. 그는 재물을 모으는 데 관심이 없었고, 평생을 가난 속에서 시를 지으면서 살았습니다. 자식은 82녀를 낳았으나 모두 일찍 죽었기 때문에 불행한 일생을 보냈지요. 그러나 홍세태는 해동유주(海東遺珠)라는 시집을 펴내 위항문학(委巷文學) 발달에 구심점 역할을 했습니다. 살다 보면 영욕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기가 쉽지 않은데 그런 점에서 홍세태의 삶은 오늘날 우리에게 큰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속량             몸값을 받고 노비의 신분을 풀어 주어 양민이 되게 하는 일.

 

위항문학       중인, 서얼 출신들에 의해 이루어진 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