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 향기 거두어 이끼 속에 감추다 – 정온, 「절매식호중」
매화야 가지 꺾였다고 상심치 말아라 寒梅莫恨短枝嶊
나도 흘러흘러 바다를 건너 왔단다 我亦飄飄越海來
깨끗한 건 예로부터 꺾인 일 많았으니 皎潔從前多見折
고운 향기 거두어 이끼 속에 감춰두렴 只收香艶隱蒼苔
조선 중기의 문신인 동계(桐溪) 정온(鄭蘊)이 지은 한시 「절매식호중(折梅植壺中, 매화가지 하나 꺾어 병에 꽃고)」입니다. 정온은 부사직(副司直)으로 있던 1614년 영창대군이 죽었을 때, 그의 처형이 부당하며 영창대군을 죽인 강화부사 정항(鄭沆)을 참수(斬首)해야 한다고 상소를 올렸지요. 그러자 광해군은 크게 분노했고, 결국 정온은 제주도의 대정현(大靜縣)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되고 말았습니다. 반정으로 인조가 보위에 오른 뒤 사자(使者)가 정온을 찾아가서 그 사실을 말하고 고난을 위로하면서 “왜 당장 가시울타리를 철거하고 하루라도 편하게 지내지 않소?”라고 묻자, 그는 “아직 명을 받지 못했소”라며 거절했다고 하지요. 그 뒤 임금의 명을 받고서야 가시울타리 밖으로 나올 만큼 철저한 사람이었습니다.
미수(眉叟) 허목(許穆)이 지은 「동계선생행장(桐溪先生行狀)」에서도 그의 품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공은 유배생활 중에도 마음을 다지고 행실을 가다듬기 위해 노력하였다. 정온과 함께 제주도로 유배를 갔던 사람 중 송상인은 바둑을 두고 이익은 거문고를 배워 유배생활의 괴로움을 달랬었지만 정온은 언제나 글을 읽었다. 경사를 고증하여 지난날의 명언을 뽑아서 『덕변록(德辨錄)』을 지어 자신을 반성했다.
이 한시도 강직하고 곧은 성품으로 인하여 귀양살이를 하게 된 자신과 매화의 고결함을 서로 견주어 지은 것이지요. 지금 정온 선생이 그리운 것은 왜일까요?
위리안치 유배된 죄인이 거처하는 집 둘레에 가시로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가두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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